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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국가유공자 지정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입력 2019.06.16. 13:27 수정 2019.06.16. 13:27 댓글 0개올해는 국가유공자 선정과 관련한 논쟁이 유난히 시끄럽다. 좌익 경력에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손혜원 의원의 부친에 대한 논란을 시작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정과 명단 공개에 대한 논란, 이제는 조선의열단 김원봉 단장 서훈에 대한 논란으로 계속된다. 이 논란은 20세기의 케케묵은 이념 논쟁을 재점화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역사에 따른 국가유공자 선정 논란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의 국가유공자 기준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유공자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을 말한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국가 유공자는 전몰군경이나 전상군경, 참전 유공자, 독립운동을 한 순국선열·애국지사, 4·19혁명 사망·부상자, 재일학도의용군, 순직·공상 공무원 등으로 작년 말까지 모두 84만7천78명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자주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었다. 이제는 독립과 민주주의 운동으로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전쟁을 경험한지도 오래됐다. 이에 따라 국가유공자 선정기준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도 됐다. 과거 독립운동과 전쟁, 민주주의 운동의 희생자에서 이제는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적으로 공로를 세우며 희생한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공무원이 아닌 신분으로 민간 영역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기관과 조직이 많다. 대표적으로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민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응급체계의 중앙사령탑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역할과 위치는 군, 경찰, 소방 등 국가와 국민의 기본적인 안전과 발전에 기여하는 기관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
중앙응급의료센터를 18년간 헌신적으로 이끌어 오다 순직한 고 윤한덕 센터장은 새로운 21세기 우리나라 민간인 국가유공자의 기준이 되겠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응급의료기관 평가, 국가응급진료정보망 구축,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응급의료종사자 전문화 교육,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을 통해 지난 18년간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모든 분야의 구축과 발전에 헌신적인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번 설 전날 고 윤한덕 센터장은 사무실에서 설 연휴 재난대비, 외상센터 개선방안, 그리고 중앙응급의료센터 발전 방향에 관한 서류가 놓인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채로 순직했다. 응급의료체계의 중앙사령탑으로서 가장 힘든 일정은 명절 연휴 병원의 휴진에도 사건사고에 따른 응급환자의 치료체계를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고인의 사인은 관상동맥이 심하게 굳어 발생한 심근경색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무실의 남루한 침대에서 쪽잠을 자며 격무와 스트레스에도 국가 응급의료의 발전에 공헌한 고인은 이번 설 명절 연휴에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다 희생됐다.
2010년 국립중앙의료원이 정부 소속 기관에서 특수법인으로 전환되면서 부이사관이었던 고인은 보건복지부로 복귀하지 않고 선진국 수준의 응급의료체계 구축을 위해 공무원 신분을 내려놓고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남았다. 고인은 생전에 의사로서 25년 경력에도 은행 융자를 받아 전세로 살 정도로 청렴했다.
고 윤한덕 센터장은 일생 국가를 위하여 일관되게 공헌하다가 국민의 안전이 심히 우려되는 기간에 격무로 희생됐다. 고인은 비록 민간인 신분이지만, 21세기 새로운 시대에 국가를 위한 공헌과 희생은 국가유공자의 기준으로 삼을만 하다.
민간인 신분으로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사람은 1983년 버마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 희생자 중 대통령 주치의 1명과 기자 1명 등 총 2명이다. 그 이후 30년이 넘도록 지정되지 않고 있다. 국가유공자법 시행령 제6조 2항에는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적으로 이바지해 국가 발전에 뚜렷한 공로가 있는 사람은 국가유공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새 패러다임에 따른 국가유공자 지정이 필요할 때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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