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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웃픈 아파트 분양 시장

입력 2019.06.13. 08:40 댓글 0개
정명철 부동산 전문가 칼럼 (주)Space-X 대표

어렸을 적에 우연히 길을 걷다 동전을 주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값어치 없는 동전이라도 고의로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실수든 뭐든 누군가는 흘렸기 때문에 주운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께 몇 가지 질문을 해볼까 한다.

거리에 주인이 없는 물건이 떨어져 있다. 또는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했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값어치라면 이 물건을 줍겠는가? 10원, 100원, 500원…?

또 하나 가정해보자. 떨어져 있는 돈 또는 물건을 여러명이 발견했다. 역시 주인은 없다. 이 물건은 누가 가져야 할까? 먼저 본 사람? 먼저 주운 사람? 추첨? 아니면 N분의 1? 이 물건을 몇십명, 아니 수만명이 발견했다면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는 게 맞을까?

떨어져 있던 물건이 동전이 아니라 부동산이었다면 상황은 어떻게 달라질까?

비슷한 상황이 얼마전 부동산시장에서 벌어졌다.

지난달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S아파트 한 채를 ‘줍기’ 위해 수만명이 달려들었다.

국토교통부와 해당 자치단체가 자격 요건 전수조사를 벌였고, 2년 전 분양된 아파트 중 1가구가 부적격 판정이 나 당첨 취소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그 1가구는 2년 전 가격인 8억원대로 재분양됐다.

이 집은 청약통장 없이도 만 19세 이상의 가구주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무순위 추첨’ 방식으로 분양됐다. 여기에는 1주택자를 포함해 현금 부자, 다주택자 등이 몰렸다. ‘일단 넣고 보자’는 ‘아파트 줍줍(아파트를 줍고 또 줍는다는 뜻의 신조어)’족들의 신청이 쇄도했다.

현재 시세와 2년전 시세의 차이는 약 5억원. 당첨만 되면 5억원을 벌어들이는 셈 아닌가. 경쟁률은 4만6850대 1까지 치솟았다.

이 내용을 담은 기사에는 ‘부동산 판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비아냥 댓글이 수도 없이 달렸다.

S아파트를 꿈꾼 4만6580명 중 누군가는 숨쉬기조차 힘든 경쟁무대에서 겨우 버티고 있을 무주택자였을 것이고, 당첨되더라도 계약금도 마련하지 못할 사람에게는 ‘앉아서 번다’는 5억원도 그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다.

높아진 분양가에 계약금 부담은 커졌고, 까다로워진 중도금 대출요건, 십여차례 넘게 바뀐 청약제도로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기회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어렵게 당첨이 되도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해 분양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무순위 청약을 이용한 현금부자들의 ‘아파트 줍줍’ 현상과 ‘묻지마 청약’도 늘고 있다니 웃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부의 양극화를 잘 묘사해 세계의 인정을 받은 한 영화감독이 있다. 부동산시장을 보고, 이를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부동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 부의 증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며, 당연한 일이다.

길에 떨어진 작은 동전을 보고도 구태여 허리 숙여 줍지 않는 것처럼, 화폐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지금, 미래가치가 높은 부동산으로 자금이 유입되는 것도 어쩌면 순리일 것이다.

다만, 길을 가다 떨어진 동전을 보면 동전(화폐)의 값어치를 떠나 내 것이 아니니 줍지 않겠다는 생각,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울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너무 뜨겁게 달궈진, 불타오로는 분양시장에서 화상을 입지 않는 현명한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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