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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관세 연기됐지만…트럼프, 불법이민·무역갈등 해결하나

입력 2019.06.09. 05:00 댓글 0개
10일 관세부과 계획은 일단 보류 발표
美 생산기지 멕시코에도 관세 부과 예고
공화당 내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 나와
【워싱턴=AP/뉴시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떠나 영국으로 향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2019.06.05.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멕시코와 불법이민 문제에 관해 합의했다며 오는 10일 예정한 멕시코산 수입품 전부에 대해 5% 관세 부과를 무기한 보류했다고 발표했다. 멕시코가 미국으로 오는 불법이민의 유입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취하기로 동의했기에 관세 발동을 취소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자세한 관련 사항은 국무부가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갈등을 증폭하던 양국 관계를 급전환시켰다.그는 불과 전날까지만 해도 멕시코 관세 부과를 위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뿌리깊은 멕시코로부터의 불법이민 문제가 이번에는 해결되는 것일까. 미국과 멕시코 간의 무역갈등도 함께 해소될까.그렇게된다면 트럼프로선 일석이조인 셈이다.

【피에드라스네그라스=AP/뉴시스】2월5일(현지시간) 멕시코 피에드라스네그라스의 이민자 대피소 울타리를 통해 이민 가족들이 건너편을 보고 있다. 2019.06.05.

◇'불법이민 해결' 내걸고 단계적 관세 인상 예고

트럼프 대통령은 5월30일(현지시간) 저녁 돌연 불법이민이 계속되면 6월10일부터 멕시코 전제품에 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윗을 올렸다. 트윗을 통해 "멕시코는 틀렸고 나는 곧 반응을 내놓겠다"고 경고한 지 9일 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상세한 내용을 게시했다. 멕시코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관세는 10월1일까지 매달 5%포인트씩 올라 최고 25%에 달한다. 백악관은 최악의 경우 25% 관세율이 영구적으로 고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불법 이민자가 미국 납세자의 세금을 낭비하고 각종 범죄로 불안을 야기한다고 비난했다.

멕시코 관세 정책이 발표된 날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국경수비대 엘패소지구가 전날 엘패소 국경에서 1036명의 불법이주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역대 최대규모였다.

【티후아나=AP/뉴시스】지난해 11월21일(현지시간) 멕시코 티후아나에 있는 멕시코와 미국을 분리하는 장벽 근처 임시 피난처로 중남미 이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2019.06.05.

◇멕시코, 美 생산기지…승자 없는 관세 분쟁 우려

'관세맨'(Tariff Man)을 자처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가 아닌 정치·사회 문제와 관세를 연관 지었다는 점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관세를 수단으로 불법 이민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한다면 앞으로 어떤 사안에서 관세 정책이 등장할지 종잡을 수 없어서다. 이는 각국이 약속한 세계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조치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멕시코 관세는 북미에서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WTO 하의 의무를 모두 위반한다. 미국은 세계시장에서 무법자이자 관세 정책 악당 국가(tariff-policy rogue state)가 됐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멕시코는 미국이 한창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는 사정이 다른 나라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미국의 유일한 경쟁 상대로 꼽힐 만한 국가지만, 멕시코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가장 강력한 우방국 중 하나인 데다 경제 규모는 미국과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관세 정책을 밀어붙였다.

중국을 향한 선전포고와 달리 멕시코 관세를 지지하는 의견은 찾기 힘들다. 공화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뿐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을 이끄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반대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도 그럴 듯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붙어있는 멕시코는 미국의 생산 기지 역할을 한다.

미국이 지난해 멕시코로부터 수입한 규모는 3465억달러(약 411조원)로, 여기에 5% 관세율을 적용하면 173억달러(약 20조원)다. 이는 멕시코만의 부담이 아니다.

자동차 업계를 예로 들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의 전임 격인 나프타 시절부터 미국 자동차 기업들은 무관세 지역인 멕시코에서 차를 생산했다.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자동차에도 멕시코산 부품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CNN에 따르면 도이치은행의 자동차 분석가인 이매뉴얼 로즈너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고 밝혔다. 그는 25%관세가 현실화하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차 가격이 평균 1300달러(약 153만원) 오를 것으로 추정했다. 가격 인상은 자동차 수요 감소로 이어져 연간 자동차 생산량이 300만대 줄어들 수 있다. 이는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동차 산업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이후 가장 큰 타격이다. 싱크탱크 자동차연구센터(Center for Automotive Research)는 미국 조립공장에서 사용되는 자동차 부품의 16%가 멕시코에서 왔다고 분석했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트럼프 정부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정책으로 애를 먹었다.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는 관세가 촉발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각각 10억달러 이상을 부담했다고 추정된다.

상무부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해 미국이 수출하는 전체 자동차의 8%인 140만600대를 사들였다. 캐나다, 중국, 독일에 이어 4번째다.

관세가 부과될 경우 식료품 가격도 오른다. AP통신에 따르면 멕시코 서부의 광대한 과수원에서 아보카도를 재배하는 한 농장주는 관세가 멕시코의 생산자보다 미국의 아보카도 애호가에게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산 아보카도에 대한 미국의 수요는 매우 굳건해서, 아보카도 가격이 한 해 동안 4배나 오를 때도 여전히 소비자들은 아보카도를 구매했다.

【타파출라=AP/뉴시스】5월30일(현지시간) 멕시코 치아파스주 타파출라의 이민자 대피소에서 이민 아동들이 식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2019.06.05.

◇몰려드는 불법 이민자…해결책은 찾기 어려워

트럼프 정부 들어 멕시코 접경도시에 국경 장벽을 세우는 등 강경책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구금한 인원은 이미 5만명을 넘어섰다.

NYT는 3일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수많은 뗏목이 떠 있다고 보도했다. 뗏목꾼들에 따르면 최근 멕시코 당국의 엄격한 단속은 불법 이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숙련된 뗏목꾼인 마빈 가르시아는 그가 운행하는 영역에서 최근 이틀 사이 150명이 불법으로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멕시코 당국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NYT는 정부 통계에 따르면 멕시코는 지난 4월 1만5000명의 이주민을 강제 추방했다고 보도했다. 3월의 9100명보다 증가한 수치다. 지난 두달 동안 멕시코 정부는 지난해 동기보다 67% 많은 이주민을 내쫓았다.하지만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의 경제가 최악의 상태에 놓이면서 이민 행렬은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YT가 "평생 가난한 사람들의 챔피언으로 살아왔다"고 묘사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과연 트럼프 대통령을 만족시킬 수있는 불법이민근절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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