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냉면

입력 2019.06.04. 19:39 수정 2019.06.04. 19:39 댓글 0개
최민석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문화스포츠에디터

오랫 동안 경색돼 있던 남북관계 개선에 물꼬를 튼 것은 ‘냉면’이었다.

지난해 가을 문재인 대통령과 그 일행이 평양을 방문,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은 후 남북관계는 화해 모드로 반전됐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후 서울과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여름철 음식인 냉면을 먹기 위해 식당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바야흐로 ‘냉면의 계절’ 여름이 시작됐다.

당시 냉면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냉면맛을 느끼고 즐기는 모습에는 남북이 따로 없었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전주비빔밥, 광주무등산보리밥, 남원추어탕 등 음식은 공동체의 정서를 연결하는 사회적·역사적 매개체이다. 역설적으로 냉면이 전국 각지로 확산된 계기는 6·25전쟁이었다.

전쟁 때 내려온 피난민들이 부산에 터를 잡고 냉면거리를 만든 것이 1954년이었다.

냉면에는 남북이 따로 없었고 대립도 갈동도 철조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냉면 국수는 메밀이 주재료이다.

메밀의 원산지는 바이칼호와 아무르강변인데 만주와 한반도 북부지방으로 넓게 분포한다.

기르지 않아도 스스로 잘 자라서 우리 민족은 춘궁기 때 구하기 쉽고 조리하기 편했던 메밀을 주식으로 즐겨먹었다. 메밀은 차가운 성질을 띠어 예부터 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단골 메뉴였다. 메밀이 우리 음식문화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면 이동경로, 역사적 전개와 맥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메밀이 분포하는 땅이 고구려 옛 영역과 일치하고 최고의 냉면 주산지가 평양과 함흥인 점도 이채롭다.

함흥냉면은 메밀에 녹말을 많이 넣어 질기고 평양냉면은 녹말을 덜 넣어서 부드럽다. 평양 사람들은 냉면을 ‘국수’라 부르며 즐겨 먹었다.

‘동의보감’에는 메밀이 독이 없고 오장에 낀 더러운 것을 몰아내며 정신을 맑게 한다고 적혀 있다.

남북정상이 두 손을 맞잡은 건 냉면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야 정쟁으로 연일 막말과 폭언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에게 남북화해를 이끌어 낸 ‘냉면회동’을 권하고 싶다.

냉면 한 그릇씩 나눠 먹으며 허심탄회한 대화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국회 정상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민석 사회부 부장 cms20@srb.co.kr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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