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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주시장의 경북대 강연
입력 2019.06.02. 13:15 수정 2019.06.02. 13:15 댓글 0개“저는 사실 놀라웠습니다. 대구와 광주는 정말 전국에서 알아주는 라이벌 도시인데 그곳의 시장님이 와서 강의를 한다는 게 놀라웠고 또 상생을 중심으로 말하는 게 놀랐습니다.”
“이번 광주시장님의 강연을 듣기 전만해도 솔직히 달빛동맹은 물론이고 광주시장님이 어떻게 생기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 강연을 통해서 달빛동맹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지역 갈등해결을 위한 두 지역의 다양한 노력을 알게 되었다.”
위는 지난 5월 2일 경북대 경하홀에서 열린 이용섭시장의 강연을 듣고 수강생들이 제출한 리포트 구절이다. 올해부터 경북대와 전남대간에 교수교류협정이 체결되어서 필자는 이번 봄 학기에 경북대에 파견교수로 가서 “(지역갈등해소) 정치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설강하였다. 이는 전남대 교수가 대구 현지에 가서 경북대 학생들과 함께 망국적인 지역갈등의 문제점과 해소방안을 찾아보자는 교육적 의지가 깔려있다. 이 과목의 커리큘럼에 광주시장 초청강연이 기획되어 이용섭시장이 직접 경북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인 삶의 철학도 들려주고 그동안의 영호남간의 달빛동맹의 성과와 의의 등을 설명함으로서 대구시뿐만 아니라 영남 전체에 큰 호응을 얻었다.
국제화시대에는 지역단체장이 행정수반과 대사직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된다. 올해는 광주시장이 달빛동맹 일에 직접 나서야 될 이유가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5.18 광주항쟁의 정치화가 다른 때와 달리 매우 격렬하게 불어 닥쳤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화의 순수한 에너지인 5.18을 음해하려는 정치세력의 준동과 이에 대한 광주의 반격과 대항, 그리고 재판출두를 위해 광주에 온 전두환 씨를 둘러싼 논쟁과 역대항 등 올해는 예년과 달리 광주와 호남인들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 많이 생겼다. 때문에 올 초부터 광주와 대구시장이 직접 나서 달빛동맹 체제를 가동하고 5.18정치화의 부정적인 확산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여러 형태의 교류와 사업을 전개하였다. 예컨대 놀랍게도 권영진 대구시장은 2.17일에 “5.18 망언에 대해 광주시민들께 사과드린다”는 페북 메시지를 광주시장에게 발송하였으며, 양 도시는 상대방 도시의 대표적인 항거 일을 상징하는 버스노선(대구 518, 광주 228)을 개설하는 등 과거와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 들 정도의 밀착된 상생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광주시장의 경북대 강연은 달빛동맹의 연장선에서 5.18정치화 현상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었다. 여러 음해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광주시장이 정치적으로만 반격할라치면 이는 정치사회의 전유물 즉 정치행위로 해석되어 오히려 그 가치가 훼손되고 변질되어 버린다. 그러나 영호남간의 탈정치적인 교류와 접촉의 확대는 정치적 선언의 결집효과보다도 훨씬 진중하고 오래 지속된다. ‘광주시장의 경북대 강연’이라는 보도만으로 국민적인 호감과 지지를 더 얻을 수 있게 만드는 문화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영호남갈등해소 정치학’ 과목은 크게 2부분으로 기획하여 (1) 영호남갈등의 원인, 과정 그리고 해결에 관한 학문적인 검토와 (2) 호남인과 경북대 학생들 사이의 소통 구조의 확립에 두었다. 해방 후 호남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보수적인 정치문화를 지닌 곳이었다. 즉 1971년 김대중과 박정희간의 대선전까지는 여당후보인 이승만과 박정희의 주요 지지층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조봉암이나 윤보선에 대한 지지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데 87년 민주화이후 형성된 정치구도로 인해 지금 현재까지도 지역갈등의 본산지로 자리 잡고 있다. 왜 호남이 한국지역갈등의 센터로 작용하고 있는가? 이는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사회심리의 부산물도 아니다. 즉 양 지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상대방 지역을 차별하도록 교육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정치가 문제이다. 바로 정치인들이 지역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고 활용하여 자신들의 정치권력구조를 강화하려했기 때문에 영호남 갈등구조가 더욱 첨예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내용을 경북대 학생들이 한 학기동안 충분히 숙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석과 학습을 실제적인 지식으로 융합시켜주는 기제는 무엇일까? 바로 호남인들과의 열린 대화창구이다. 다른 2차적인 학습경로의 간섭을 배제하고 진솔하게 호남인들과 대화하고 악수함으로서 경북대 학생들의 지역갈등 인식은 과거의 신민적인 정치문화를 초월하여 통합한국에 적합한 민주시민문화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경북대 학생들이 더 이상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고 영호남 상생발전의 동량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호남과 광주시청이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광주시장 초청이후 호남인을 초청하려던 계획은 이후 잘 진행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5.18주간을 맞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5.18 정치화가 더욱 격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초청하려는 측과 초청하려는 측 모두 몸을 사리게 만드는 5월 중순에 발생하는 한탄스러운 한국정치의 현주소!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다. 앞으로 대구시장이 전남대에서 강연할 차례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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