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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공영형 사립대학’, 폐기할 공약이 아니다
입력 2019.05.24. 13:26 수정 2019.05.24. 13:26 댓글 0개지난 5월 9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 2주년을 맞아 리얼미터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전수 조사하고 평가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률은 13%에 불과했다. 그 중 교육 분야에서 완료된 공약은 총 5개로서 10.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서울신문과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문재인 정부 2년 100대 국정과제 평가’를 수행하였는데, 집중 분석한 173개 항목 가운데 이행이 완료됐거나 약속대로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 항목은 94개(54.3%)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에 속한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발전가능성이 높은 사립대학에 정부가 재정적인 지원을 통해 자율성 보장과 함께 공공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교육정책이다.
교육부는 지난해에 올해부터 5곳 정도의 대학을 선정해서 시범사업을 시작하려고 812억 원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했지만,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기에 이르렀고 그 반발을 의식해 ‘공영형 사립대학 기획연구’ 사업으로 10억원의 예산만을 편성해놓고 있다. 그런데 이조차도 기획재정부 ‘수시배정’ 사업으로 묶어놓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상태다. 차마 폐기하지는 못하고 시늉만 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공영형 사립대학제도는 교육계와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사립대학의 비리가 도를 넘은 것으로 나타나 이를 척결해야 한다는 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이와 함께 사립대학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대안으로서 건전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공영형 사립대학 제도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공영형 사립대학제도는 무엇보다도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제도이다. 아시다시피 수도권에 인구와 자본이 밀집되다 보니 교육에서 서울과 비서울 간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인서울 대학교 열풍 현상이다.
이와 함께 지방 사립대는 해가 갈수록 선호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 때문에 지역의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상당수 유출되어 지역 인구가 감소되고 지역 경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그런데 만약 지방의 한 도시에 수도권의 인기대학에 상응하는 국공립대학과 공영형 사립대학이 두세 개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우선 지방의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현상을 상당 부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정부는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지역에서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더욱 힘쓰게 될 것이다. 공영형 사립대학은 지역의 인구 증가는 물론 지역경제의 활성화, 더 나아가 지방분권화를 촉발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대학의 육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기서 지방대학 육성을 위해 한 가지 제안해볼 수 있는 방안으로서 중앙정부가 쥐고 있는 고등교육 예산을 지방정부로 단계적으로 이전시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초·중·고에 해당하는 비고등교육 예산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대부분 이전됐지만 고등교육 지원 예산은 전혀 이전되고 있지 않다. 고등교육 예산의 경우 중앙정부가 85%나 차지하고 있고, 지방정부는 15%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 중앙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을 지방정부로 차츰차츰 단계적으로 이전시켜 각 지방정부로 하여금 각 지방의 특성에 맞게 지방대학을 육성하는 데 힘쓰게 해야 할 것이다. 다가올 지방분권시대에 대비하여 교육 자치를 단계적으로 실현시켜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이을 것’이라던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 남은 임기동안 초심을 잃지 말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공약의 이행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촛불혁명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100대 국정과제’는 차질 없이 이행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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