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명분과 실리 사이

입력 2019.05.15. 16:56 수정 2019.05.15. 16:56 댓글 0개
박석호의 약수터 무등일보 경제부장/부국장

지난 주말 집에서 한국 영화 ‘남한산성’을 봤다.

지난 2017년 개봉한 이 영화는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때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4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주화파(화친파) 최명길과 주전파(강경파) 김상헌이 벌이는 불꽃 튀는 논쟁은 압권이다. 최명길은 ‘청과 화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며 최대한 실리를 추구하자고 주장한 반면, 김상헌은 ‘명을 배신할 수 없다’는 성리학적 명분론으로 맞섰다.

작금의 우리 상황은 병자호란 때와 별 반 다르지 않다.

지정학적 위치상 명분과 실리를 조정하며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거의 영구적인 과제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명분과 실리의 끊임 없는 충돌을 해결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렇다면, 광주는 어떤 선택을 해 왔을까? ‘의향’과 ‘예향’, ‘민주주의 성지’ 광주는 실리 보다 명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광주신세계의 복합시설 건립사업이다. 광주시는 지난 2015년 호텔과 면세점 유치 등을 통한 관광산업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현지법인인 광주신세계에 요청했고, 6천억원이라는 ‘통큰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일부 소상공인들의 반대와 정치권 및 지자체의 중재 능력 부재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지난 2005년 시작된 어등산 개발 사업도 사업자가 수차례 바뀌는 등 14년 넘게 표류하고 있다.

명분과 실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대형사업과 이슈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이분법적인 사고와 흑백논리에 매몰돼 왔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 왔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철저히 배척해 왔다. 중간은 없었다. 특히 자치단체장과 공직사회는 중재력과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거나 우왕좌왕했다. 상생(相生)과 공생(共生)의 정신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친 명분론과 지나친 실리주의는 지역 사회에 독이 될 수 있다. 광주가 어렵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서민들은 아우성이다. 이럴 때 일수록 지역 지도자들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미래 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결정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누구도 하지 못한 ‘광주형 일자리’라는 사회적 대타협을 일궈냈다. ‘지역발전과 노사 상생’이라는 큰 틀에서 서로 조금씩 양보해 미래를 위한 지랫대를 만든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앞에는 해결해야 할 대형과제들이 산더미 처럼 쌓여 있다.

명분과 실리 사이의 황금률 찾기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다

명분에만 집착하거나, 실리만 약삭 빠르게 쫓으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힘과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 우리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살리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전제는 양보와 타협이라는 상생 정신이다. 고루한 명분론이나 특정의 이익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 영화 ‘남한산성’ 처럼 시대 흐름을 잘못 읽으면 백성들은 고통 받고 나라와 지역은 망한다.

최근 남광주시장에 출점을 추진중인 ‘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로 지역사회가 또 다시 시끄럽다.

어린이 놀이터, 장난감 도서관 등으로 전통시장 상권을 활성화시키자는 찬성측과 소상공인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반대측이 맞서고 있다. 우리 광주는 어떤 선택을 할까? 명분? 실리? 아니면 이번에는 명분을 살리면서 실리도 추구하는 상생의 정신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박석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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