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대배우(大俳優)의 '품격(品格)'

입력 2019.05.08. 17:41 수정 2019.05.08. 17:41 댓글 0개
김대우의 약수터 무등일보 취재1본부

지난 1일 제55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TV부문 대상을 수상한 배우 김혜자는 대상에 걸맞는 품격 있는 소감으로 큰 감동을 줬다. 드라마는 종영했지만 시상식 자리에 실제 대본 한 페이지를 찢어올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대배우의 수상소감은 다름 아닌 드라마 마지막 대사였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한 가지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대사가 기억나지 않은 부분은 찢어온 대본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전한 그에게 후배 배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뜨거운 감동의 기립박수로 존경과 축하를 보냈다.

행복한 삶이든, 불행한 삶이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아픔을 보듬기에 충분했던 대배우 김혜자의 품격을 보여준 명 수상 소감이었다.

시상식이 끝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 한 켠에 울림이 있는 것을 보면 그날 받은 감동의 여운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이런 대배우의 품격을 접하고 보니 폭력과 불법, 고소·고발전이 난무하는 ‘여의도 정치’가 더욱 혐오스럽고 한심하다. 오죽했으면 제1야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오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적어도 국민을 대표해 가슴에 ‘금배지’를 달겠다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품격부터 갖춰야 한다는 걸 수준 미달의 ‘여의도 정치’를 보면서 다시 한번 절감한다. 대배우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년 21대 총선(2020년 4월15일)에서는 조금은 더 품격 있는 금배지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무리인가? 마음이 무겁다.

김대우 정치부 부장대우 ksh43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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