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계엄군 없었는데 하늘에서 총 소리···헬기 사격이었다”

입력 2019.05.06. 17:06 수정 2019.05.06. 17:06 댓글 0개
[5·18 39주기-“헬기사격, 나는 봤다”]
헬기사격 목격자-당시 인성고생 신모씨
시위 따라 다니다 도청에서 목격
순회하며 방송하던 군용헬기
희생자 시신 두고 집회하던 중
‘타다다’ 하는 소리 수차례 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고흥의 신모씨가 당시 도청 앞 상황을 그려보이고 있다

“시위대를 따라서 도청까지 왔어요. 태극기가 감싸진 희생자들의 관 십수개도 기억합니다. 계엄군은 도청에서 물러났는지 보이지 않았어요. 하늘에서는 군용 헬기가 저 멀리서 선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타다다 하는 총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넘어지는걸 목격했죠.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두환에게 가서 분명히 말해주고 싶네요. 헬기 사격은 있었다고요.”

고흥의 농부 신모(59)씨는 지난 달 30일 취재진을 만나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39년의 시간이 흐른 만큼 신씨의 증언은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와중에 헬기가 선회하고 있었고, 이어 총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몸을 사렸다는 것이다.

5·18 당시 광주 인성고 3학년이던 신씨는 동생과 대인시장 인근 자취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광주로 유학온 신씨 형제는 5월 17일이 되자 뒤숭숭한 분위기에 휘말리게 됐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지면서 휴교령이 내려졌고, 계엄군이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연행하기 시작한 18일부터는 소란스러운 분위기와 더불어 ‘칼로 찔러 죽인다더라’는 이야기가 떠돌아 집에만 있었다.

위험한 분위기 속에 동생은 일찌감치 검문을 피해 고향 고흥으로 내려갔다.

시민들이 죽어나가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뉴스에서는 광주의 상황이 전혀 전해지지 않자 광주 MBC 사옥이 불탔던 20일, 신씨도 MBC 사옥이 불타는 것을 목격했다.

5·18 기간 동안 수차례 집회에 나섰던 신씨는 도청에서 비행하는 헬기를 봤고 총소리도 들렸다고 했다.

신씨가 헬기 사격을 목격한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이후로 추정된다.

헬기 사격을 목격한 날 신씨는 금남로의 인파들과 함께 도청으로 향했다.

금남로에 모인 인파는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고, 한쌍의 남성과 여성은 마이크로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갑시다”고 외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

상무관 앞에서는 집단 발포로 사망한 시민들의 시신이 담긴 관 십수개가 놓여있었고 머리에 띠를 둘러멘 청년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씨는 “사망한 열사들의 시신을 운구 함에 넣고 태극기로 덮어 광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던 때였다”며 “당시 도청 상공에서는 군용 헬기가 1대 선회하고 있었다. 시민들에게 모여 있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라고 방송을 했었다”고 말했다.

잠시 시위 현장에 집중하던 사이 갑작스레 ‘타다다’ 하는 총소리가 서너번 났다.

이어 현장에 있던 두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신씨는 전했다. 당시 헬기는 전일빌딩보다 더 높은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었다고 했다.

신씨가 본 헬기의 모습은 기체가 길쭉한 모습이 아닌 앞부분이 둥그스름한 모습이었다.

당시 광주에 파견된 헬기 중 500MD 헬기와 유사한 모습이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시민들의 사망이나 부상 여부는 확인하지 못한 채 신씨는 급히 그 자리를 떴다고 말했다.

이처럼 ‘계엄군이 도청에서 보이지 않았다’, ‘헬기 1대가 도청 상공을 선회했다’, ‘상무관 앞에서 태극기로 감싼 희생자들의 관을 봤다’는 당시 상황에 미루어 볼 때 5월 22일 전후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당시 오전 군용 헬기가 도청을 선회비행하며 전단을 살포했고, 도청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안치하고 있었다.

특히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한 상황에서 시민들을 공격할 주체가 마땅치 않다.

지난해에도 광주 서구에 거주하는 70대 시민이 1980년 5월 21일 이후 22일이나 23일 낮에 헬기가 전일빌딩 쪽으로 총탄 수십 발을 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동안 故 조비오 신부를 비롯해 많은 광주 시민들이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날은 5월 21일과 27일 새벽이었다.

김희송 전남대 5·18 연구소 연구교수는 “헬기 사격 목격을 두고 목격자들의 기억이 온전한 것만은 아니다”며 “그럼에도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군 기록들도 있는 만큼 증언들에 대해서는 열린 가능성을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신군부측은 5월 21일 광주에 무장헬기를 파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 왔으나 최근 군 기록을 통해 5월 20일 이전에 광주에 무장헬기가 파견돼 작전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계엄군이 도청 앞 집단발포 이후 시 외곽으로 철수한 이후인 22일 오전,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는 헬기 사격이 포함된 ‘헬기 작전 계획 실시지침’을 하달했다.

지침 내용은 ‘무장폭도들에 대해서는 핵심점을 사격, 소탕하라’, ‘상공을 비행 정찰하여 버스와 차량 등으로 이동하면서 습격, 방화, 사격하는 집단은 지상부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사격 제압하라’, ‘시위 사격은 20미리 발칸, 실 사격은 7.62밀리가 적합’ 등이었다.

증언을 통해 신씨는 5·18 진상규명이라는 숙제가 반드시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신씨는 “내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과 소리는 아직까지도 생생하다”며 “설마 헬기가 총을 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나 시위 열기가 고조되기에 사격을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총을 쏜 이들도 상관의 명령에 의해서 쐈겠지만 내 부모, 형제라고 생각했다면 차마 쏘지 못했을 것”이라며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두환은 총칼을 국민에게 들이댄 죄를 반드시 죽기전 사죄하고 이는 역사에 반드시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해 증언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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