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5월, 카덴차에 맞춰 꽃놀이 떠나자

입력 2019.05.01. 20:54 수정 2019.05.01. 20:54 댓글 1개
강동준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마케팅사업본부장·이사

아내가 나를 구박할 때는 언제나 아이들 이야기를 내세운다. “아이들을 위해 관심 가져 본 적 있느냐”, “아버지 노릇한 거 뭐 있느냐”는 거다.

자기 공을 내세울 때도 역시 아이들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 둘이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난 것이 모두 자기 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나를 업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아무 말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한다. 그러나 나는 별로 억울하거나 분하지는 않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기 때문이다.”

기적의 삶, 마지막 단어는 ‘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고백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 1994)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정치부 기자 초년 시절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저자의 의정생활과 정치 일화들, 또 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느끼고 고민하는 일상적인 이야기와 단상들이 모아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5월의 달력에 일정이 빼곡하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2일 부처님오신날, 15일 스승의날, 21일 부부의날, 18일 5·18 39주년,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어, 벌써 노무현 대통령 10주기”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타기를 즐겨했던 전직 대통령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립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재인의 운명’(특별판, 2017)에도 가족에 대한 기억이 한 대목을 차지한다. “대학 제적과 구속, 군 제대 이후 복학이 안되는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불행했던 삶이 불쌍했고, 내가 잘 되는 모습을 조금도 보여드리지 못한 게 참으로 죄스러웠다. 뒤늦게 내가 잘된다 해도 만회가 되는 일이 아니어서 평생의 회한으로 남아 있다.”

1975년 경희대 시절, 총학생회 간부로 유신반대 시위를 하다 구속과 동시에 제적. 당시 경찰 호송차에 실려갈 때다. “부모님에 죄송…어려운 형편에 무리해서 대학까지 보내주신 건데, 내가 그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이었다. 어머니가 호송차 뒤를 따라 달려오던 장면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었다.”

만남과 동행, 운명으로 이어진 문 대통령의 얘기나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 5공 청문회 스타, 낙선하고도 민주당 최연소 최고위원이 된 노 전 대통령의 굴곡진 얘기에도 늘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다.

5월 9일은 세차례의 암 투병에도 대학 강단에서, 또 글을 쓰며 ‘희망의 노래’를 멈추지 않았던 장영희 교수의 10주기.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목발에 의지했던 영문학자가 남긴 마지막 단어는 ‘엄마’다.

한 평생을 장애와 암과 싸운 ‘기적의 삶’답게 마지막 가는 길에 짧게 남긴 그 한 마디로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산자들에게 아직도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희망 넘치면 운명 바꿀 수 있다

여자골프 고진영(24)이 세계랭킹 1위 타이틀을 거머쥔 뒤 “골프는 인생의 작은 부분”이라며 나름의 철학을 얘기한 대목이 인상 깊었다.

고진영은 상승세 비결을 묻는 질문에 ‘행복한 삶’이라고 강조하고 골프장 밖 개인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요소로 ‘가족’을 첫 번째로 꼽았다.

‘가정의 달’ 5월을 되돌아본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는데, 가족들과 함께 카덴차(연주에서 솔로악기가 기교적인 음을 화려하게 뽐내는 부분)에 맞춰 꽃놀이라도 떠나야 할 것 같다.

6일 간격으로 아버지, 어머니와 이별한 지가 벌써 17년 째인데, 필자는 늘 ‘날이 너무 좋아 서러운 사람’이 된다.

그래도 거룩한 5월에는 감사와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엄니, 아부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아”라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고,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용서와 너그러움, 희망과 사랑이 넘치면 운명을 바꿀 수 있고 뜻하지 않는 기적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5월, 포용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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