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발품 신부 지정환

입력 2019.04.25. 17:42 수정 2019.04.25. 17:42 댓글 0개

발에는 우리 몸 206개 뼈 가운데 4분의 1가량인 52개의 뼈가 있다. 그 뼈들이 64개의 근육과 힘줄로 연결된다. 많은 뼈가 모여 있는 것은 몸무게를 지탱하고 반듯하게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몸 가죽의 2%밖에 되지 않는 발바닥이 나머지 98%를 지탱한다는 게 신기하다.

발의 수고로 인류 문명이 지금처럼 발전해 왔다. 그런 발에 대한 대접은 손에 비해 너무 소홀하다. 명칭에서부터 홀대다. 씻을 때도 “손발을 깨끗이 씻어라”로 뒷전이다. 복부인들이 재테크 할 때는 ‘발 품’을 팔면서 혹사시킨다. 정치권에서 일처리가 안 되면 “발목을 잡는다”고 발을 탓한다. 군 면제의 경우도 “평발 때문에 못 갔다”고 이유를 대니 수고에 비해 천대받는 일이 적지않다.

옛날에는 발에 대한 대접이 그러지 않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발을 씻김으로써 섬김을 보여주었고 지금도 그 전통은 면면히 이어진다. 제자 마하 가섭이 오는 낌새를 알고 죽은 뒤에 관(棺)에서 내 보였다는 ‘부처의 발’도 유명하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는 부처의 발(불족·佛足)을 그려놓고 예배 했다.

우리 사회는 묵묵히 발품을 팔아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 13일 우리 곁을 떠난 지정한 신부가 그런 사람이다. 1931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벽안의 신부는 나이 스믈 아홉이던 1964년 이역만리 척박한 땅 전북 임실에 부임한다.

지신부는 배고픈 임실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목도하고 그들의 배고픔을 달래는데 주력했다. 그가 할수 있는 것은 부지런한 발품팔이였다. 그는 부안 간척지 100헥터를 땀으로 조성해 농민에게 나눠 줬는가 하면 본국의 부모에게 받은 2천달러로 현재 가치의 1천억원대에 이르는 임실 치즈를 일궈 냈다. 그래서 ‘치즈 신부’라는 애칭을 얻었다. 치즈 공장이 크게 성공을 거두자 미련 없이 운영권과 소유권을 모두 조합에 넘겼다.

지신부는 생전에 ‘공수 신퇴(功 遂 身退)’라는 말을 좋아했다. 노자에 나오는 “공을 세웠으면 이내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공은 손에게 돌리고 묵묵히 발처럼 살다간 그를 기려 임실군은 지정환 신부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공도 없으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번듯한 기념관이 건립됐으면 한다.

나윤수 칼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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