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세월호 유가족 “매년 벚꽃 피는 이맘때면 만감 교차”

입력 2019.04.15. 17:46 수정 2019.04.15. 17:54 댓글 0개
[인터뷰]故고우재군 아버지 고영환씨
아들과 약속…5년째 팽목항 홀로 지켜
“안전사고 되풀이, 우리 세대서 끊어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세월호가 인양돼 있는 목포신항에서 추모객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srb.co.kr

“팽목항은 가족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버텨오고 있습니다.”

희생자 고우재(당시 단원고 2학년)군의 아버지 고영환(50)씨.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일상이고 현실이다. 어느덧 5년째, 그는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있다. 고씨와 뜻을 함께해오던 유가족들은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우재와의 약속을 위해 팽목항에 남아있다. 우재는 집을 떠난 지 5일, 참사 4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고씨는 돌아온 우재에게 팽목항 한켠에 참사를 기리고 아이들을 추억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현재 군과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며 ‘팽목항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다. 진도군은 팽목항에서 약 500여미터 떨어진 곳에 6월 착공을 앞둔 국민해양안전관을 짓고 이곳에 추모공간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고씨는 “국민해양안전관에 추모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며 “팽목항으로부터 수백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숙박 시설과 오락 시설을 짓고 추모를 겸하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다”고 말했다. 추모공간은 모든 사건들이 시작된 팽목항에 지어져야 그 의미가 바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시간이 흐르며 팽목항은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아이들을 잃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우재를 잃어 상심한 고씨는 집을 뒤로하고 팽목항을 지켜온 탓에 하나 남은 혈육인 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그는 “우재를 떠나보낸 뒤 하나 남은 딸을 방치하다시피 한 점이 계속 신경쓰였다”며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딸은 그간 성숙한 덕에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현재 딸은 안산이 싫어 일부러 타지 대학으로 갔다. 언젠가 이 나라마저 벗어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특조위 조사 결과 발표를 눈여겨본 고씨는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고씨는 “구조 당시의 의혹 등이 명백히 밝혀져야 되풀이되는 안전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열였다. 고씨는 “왜 구조하지 않았을까 항상 궁금하다. 진상규명 없이는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며 “부모세대에서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고스란히 아이들 세대로 짐이 넘어갈 것이다. 죽을때까지 고통스럽겠지만 여기서 끝을 봐야 해묵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년 벚꽃이 흩날리는 이맘때면 만감이 교차한다.그는 “선생님을 따라 팽목항을 방문한 학생들을 보노라면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며 “우재의 얼굴이 덧씌워지는 것 같아 아이들을 보는것이 참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팽목항은 비탄과 애원이 1천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팽목을 잊는다는 것은 참사를 잊는 것과 같다. 부디 팽목항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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