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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직무유기에 꽉 막힌 5·18 진상규명
입력 2019.04.11. 06:30 수정 2019.04.11. 08:05 댓글 0개비밀문건도 속속 공개…진실 밝혀 역사 바로 세워야 한 목소리
특별법 시행 210일째에도 한국당 비협조로 조사위 출범 못 해
'조사위 구성, 5·18 왜곡 처벌법 제정, 망언 의원 징계에 협조를'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앞두고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증언과 군 비밀 문건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에 따라 출범해야 하는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국회의 직무 유기로 7개월째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정치권이 조사위 구성과 5·18 역사 왜곡 처벌법 제정, 5·18 망언 의원들 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1일 5·18 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최근 '5·18 항쟁 핵심 과제'로 꼽히는 계엄군의 집단발포, 헬기사격, 암매장, 역사 왜곡·조작 등과 관련한 제보·증언이 잇따른다.
전 주한미군 방첩 정보요원 김용장씨는 "전두환씨가 1980년 5월21일 광주비행장에서 정호용 특전사령관, 이재우 505보안부대 대령 등과 회의를 했고 헬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간 직후 발포·사살행위가 이뤄졌다"고 증언했다.
'육군본부 작전교육참모부 작전상황일지'에도 '1980년 5월21일 (정호용)특전사령관 외 2명이 오전 8시부터 10시20분까지 기동용 헬기 UH-1H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고 기록돼 있다.
진종채 2군사령관은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18일에서 27일 사이 '전두환·노태우 등이 광주비행장에 따로 따로 내려와 전교사령관, 505보안부대장을 만나고 갔다'는 사실을 2군사령부 참모부에서 보고받았다"고 진술했다.
발포 명령은 '보안·특전사령관 전두환·정호용'으로 이어지는 별도 지휘체계에 따라 이뤄졌을 것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80년 5월20일과 21일 광주역과 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발생했지만, 3공수여단장과 11공수여단장은 상급자인 31사단장과 전교사령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1980년 5월24일 광주 송암동과 호남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서 '계엄군끼리 오인사격'에 의한 군인들의 대량 희생 등도 지휘체계 이원화에서 비롯된 사례들로 꼽힌다.
헬기사격을 목격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전두환씨가 5·18 39년 만에 광주지법에서 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을 계기로, 기총소사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1980년 5월21일 또는 5월27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광주공원, 광주천변, 조선대 뒤편 절개지 등지에서 계엄군이 헬기에서 총을 난사했다는 증언은 39년간 잇따랐다.
5·18 헬기사격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서도 계엄사령부가 1980년 5월21일부터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사격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5·18 항쟁 37년만에 무더기로 발견된 총탄 흔적도 헬기에서 쏜 탄흔으로 밝혀졌다.
국방부가 1985년 작성한 '광주사태의 실상'이라는 보고서엔 '광주시민 47명이 (LMG)기관총에 맞아 숨졌다'고 기록돼 있다.
국방부는 이를 지우고 '기타 사망자 48명'으로 조작해 제125회 임시국회 대정부 질의 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1985년 6월5일 꾸려진 '80위원회(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가 문제될 내용을 미리 없앤 것으로 추정된다.
5·18 때 공군 수송기가 시신을 광주 밖으로 옮긴 정황이 담긴 군 비밀문건도 나왔다.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3급 비밀 문건을 보면, 1980년 5월25일 김해~광주를 운항한 수송기 기록 옆 비고란에 '시체(屍體)'라고 쓰여 있다.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수리부속을 싣고 광주에 내린 뒤 시신을 김해로 옮긴 것으로 관측된다. 해당 기록은 공군 기록과 계엄사 문건(1982년 2월)에서 삭제됐다.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주둔지가 김해가 아닌 점, 군이 임무 중 사망한 군인을 '영현(英顯)'으로 표기하는 점 등으로 미뤄 광주 밖 운반 시신이 5·18 때 희생된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밖에 무력 진압과 정권 찬탈의 명목을 확보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지속적으로 흘린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공작 경위도 재조명받고 있다.
이 같은 의혹과 핵심 과제들을 규명하기 위해선 '조사위 출범'이 시급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비협조와 여야의 정쟁으로 법 시행 210일째 표류 중이다.
한국당은 뒤늦게 조사위원 3명을 추천한데 이어 지난 2월 부적격 위원 2명을 재추천해달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5·18을 왜곡·폄훼한 의원 3명에 대한 징계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추천 위원 중 일부가 5·18 당시 구속·유공자가 있어 제척 사유에 해당된다는 지적 또한 '억지'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특별법은 조사대상 사안별로 관련성을 문제삼고 있지만, 추천 위원들이 발포 명령 등과 관련이 전혀 없는데다 법은 구속·유공자를 원천 배제하는 구조가 아니다.
또 유엔인권법은 과거 청산 원칙 중 하나로 관련 피해 당사자들과 가족을 조사에 참여시키고 의견을 수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5·18 진상규명을 국정 핵심·시대적 과제로 여긴다'고 공언한 민주당도 지난해 2월 특별법 통과 이래 6개월이 지나 위원을 '늑장 추천'해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진태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정치권은 광주항쟁의 진실을 온전히 규명해야 할 책무를 저버려선 안 된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위원들로 조속히 조사위를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선태 전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은 "한국당은 반헌정·군부독재 세력의 후예라는 정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면 조사위 구성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피해자가 분명하고 국내외적 평가가 끝난 5·18의 역사를 왜곡하며 진상조사를 방해하는 행위는 국론 분열을 부추길 뿐이다. 깊은 성찰과 함께 왜곡 처벌법 제정과 망언 의원 징계에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달라"고 역설했다.
한편 진상규명 대상은 1980년 5월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군 비밀조직의 역사 왜곡·조작, 집단발포 경위·책임자, 계엄군 헬기사격 명령자·경위, 민간인 사망·상해·실종, 암매장 사건 등이다. 위원 9명을 중심으로 꾸려질 조사위는 동행명령 등으로 5·18 관련자들을 강제 조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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