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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과 발가벗음 사이, 미의 기준···'불가능한 누드'

입력 2019.03.24. 07:01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근대 이전의 동양에서 누드모델의 존재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서양 문화에서 누드는 미술의 기원이 됐지만, 중국에서는 누드가 아예 무시돼왔다.

'불가능한 누드'의 저자 프랑수아 줄리앙 파리7대학 교수는 "중국에서는 해부학 자체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었다"고 설명한다. "중국인들은 형태학보다는 경락을 중심으로 하는 기의 순환체계에 더 많은 관심을 지녔다. 그 기운은 인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소통하는 것이다."

누드를 매개로 동양과 서양의 미학을 분석한 책이다. 줄리앙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누드 작품으로 평가받는 명(明)대 후기 구영(仇英)의 '춘몽'을 살펴본다. "이 작품에서 신체를 감싸고 있는 옷의 선들이 굉장히 잘 표현되고 있다. 그에 비해 옷을 벗은 신체는 마치 포대자루를 쌓은 것처럼 밀도와 구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구영이 옷의 선을 중시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맥이 있다고 여겨 산맥이라 부른다. 사람이나 산은 모두 기운의 흐름이고 그래서 서로 교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셈이며, 가시적인 형태를 통해 그 너머에 있는 본질적인 형상을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줄리앙은 "누드야말로 감각적 형태를 통해 원형의 형상을 찾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형상과 질료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는 이 세계를 존재라는 개념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유와 무에 대한 명확한 구분도 없고, 유와 무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서양에서는 누드를 통해 신분 지위와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즉 누드는 철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인 것이다. 누드의 목표는 감각적 모델을 통해 불변의 이상적인 형상을 찾는 것이다.

"누드는 우리의 정신 속에 감추어진, 혹은 우리가 잊어버린 그 선택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너무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아카데믹한 누드라 할지라도 그것이 부재하게 되면 그 불가능성을 주목하게 되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재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뚫어지게 바라보게 된다. 그 재현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일반적이라서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누드가 초점을 맞추어온 것, 중국이 간접적으로 보여온 것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지게 된다. 거기에서 누드는 우리가 암묵적인 방식으로 굳이 토론할 필요도 없이 늘 생각해오던 것, 즉 형상, 이데아, 혹은 아름다움에 대해 탐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누드는 육신과 발가벗음 사이, 욕망과 수치심 사이를 중재하여 미의 기준을 수립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연 무엇으로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가진 것인가? 누드의 그러한 뜬금없는 등장은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나아가 철학의 대상으로 부상한다. 누드는 아카데미가 특히 애호하는 주제가 되어 우리를 질리게 만들더니 마침내 이론을 조작하는 자가 된 것이다." 박석 옮김, 232쪽, 1만5000원,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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