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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재편 한창이지만 중형 조선사는 '고사 위기'

입력 2019.03.23. 13:07 댓글 0개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중형 조선사 2곳에 그쳐
일감 줄어들어 국내 시장 점유율 4%대 그쳐
한국 조선업 생태계 유지 위해 지원방안 필요

【통영=뉴시스】신정철 기자 =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내 188만㎡(58만여평)의 성동조선해양이 오는 19일 M&A(인수·합병)에 따른 입찰을 벌인다. 조선소 입지조건이 전세계에서도 손꼽히고, 시설도 현대식으로 잘 마련돼 있는게 장점인 성동조선해양의 야드 모습이다. 2018.12.05.(사진=성동조선해양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는 등 조선업 재편이 한창이지만 중형 조선사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 조선소와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일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인수합병(M&A) 시장 매물로 나와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상적으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형 조선사는 대한조선과 대선조선 2곳뿐이다.

지난해 4분기 중 국내 중형 조선사는 중대형 탱커 4척, 피더(소형) 컨테이너선 1척, 여객선 2척 등 비교적 다양한 선종에 걸쳐 16.3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수주했는데 모두 이 두 곳에서 일감을 따냈다.

중형 조선사 중 가장 실적이 좋은 대한조선은 지난해 15척의 선박을 수주해 2020년까지 건조 물량을 확보했다.잔량은 23척이다. 대선조선도 수주 증가에 힘입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조선사도 호황을 누렸던 2000년대 중후반에 비해서는 수주량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배구조 불확실성도 남아 있다. 대한조선은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지분 67.7% 보유) 매각에서 배제되면서 '홀로서기'에 나서야 하는 처지이며, 대선조선은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의 주도로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내 5대 중형 조선소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지난 1월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완전자본잠식은 자본금보다 빚이 더 많은 상태를 의미한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6874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을 확정, 회사의 최대주주가 기존 한진중공업홀딩스에서 산업은행으로 바뀌게 됐다.

성동조선과 STX조선도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은 매각이 두차례 불발되면서 다음달 3차 매각을 시도할 계획이다. STX조선해양은 자구계획안을 이행하기 위해 주요 자산을 처분하고 있다. 수주잔량은 36만7000CGT(15척)로 상당하지만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에 어려움을 겪으며 건조 작업이 사실상 멈춰선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형 조선소 수주량은 54만7000CGT로 전년보다 18% 줄었다. 수주금액도 13.6% 감소한 10억8000만달러(약 1조2189억원)에 그쳤다. 중형 조선수주액이 국내 신조선 수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로 2006년(10.0%)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를 포함한 한국 조선업계가 지난해 7년 만에 중국을 제치고 수주량 세계 1위를 탈환한 것과 대비된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수주실적은 크게 호전된 반면 중형조선사들의 수주활동은 부진했다"며 "특히 중형 탱커시장 부진으로 국내 중형조선사들에게는 불리한 시장구조가 형성됐다. 여객선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탱커의 비중이 절대적"이라고 평가했다.

중형 조선사들은 생존에 필요한 수주를 위해 RG 발급 등 금융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RG는 선주가 선박 건조 계약 때 조선사에 준 선수금을 금융사가 지급 보증하는 것으로 RG 발급이 안 되면 선박 수주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금융기관이 중형 조선사에 RG를 발급할 때 정책금융기관이 보증하는 RG 보증 지원액을 10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시장 전망을 감안할 때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는 지적이다.

정부의 조선업 지원방안이 대형사에 쏠려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미경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의 조선소 지원방안에서 전체 예산(7조원) 중 2025년까지 중형조선업에 유입 가능한 지원은 총 4000억원 수준으로 전체의 5.7%에 불과하다.

정 교수는 "수주절벽으로 RG 발급 최저점을 기록한 2016년에도 중형 조선 RG 발급액이 6000억원, 중소형 조선의 경우 823억원에 달했다"며 "25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조선산업 활력제고 방안의 예산에 포함시켜 약 5조 규모의 RG 발급이 가능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한국 조선업 생태계를 위해서도 중형 조선소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신조시장은 대형과 중소형이 5대 5, 즉 중소형 선박이 50% 정도 수준을 차지한다"며 "기본적으로 중형 조선업체들의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빅3 중심으로 조선산업이 재편되는 것은 한국 조선산업의 선종 다양화나 사내하청 확대라는 고용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중형조선업체의 회생은 한국 조선업의 산업생태계 회복으로 필수적"이라고 평가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형 조선사가 주로 건조해온 벌크선, 유조선 등의 범용선박이 세계 선박 시장에서 70~80%를 차지한다"며 "이 사장을 놓치면 기자재 업체들이 성장하는 기반이 좁아지고 이는 곧 대형 조선사도 경쟁력 있는 선박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올해는 탱커 선종 중 중형 조선사가 강점이 있는 MR(미들레인지 석유운반선) 탱커의 강세가 예상되지만 해당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조선사가 별로 남아있지 않다"며 "업황이 회복돼도 한국 중형 조선사에게는 남의 일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kje13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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