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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로 손주 잃은 노인의 선택, 김희선 '골든 에이지'

입력 2019.03.18. 15:31 댓글 0개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시인은 소파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바꿔치기할 생각을 하겠는가. 그런데도 이상하게 시인은 그 편지에 마음이 끌렸다. '독자들의 비밀결사'라는 매혹적인 이름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어놓은 탓이었다. 그는 독자를 사랑했다. 아니, 그 자신부터가 원래 독자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서서히 진행되더니, 너도 나도 독자는 죽었다고 선언하기 시작했다."('18인의 노인들' 중)

201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김희선(47)의 소설집 '골든 에이지'가 나왔다. 표제작을 비롯해 '공의 기원' '해변의 묘지' '지상에서 영원으로' '18인의 노인들' 등 8편이 담겼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과거와 현재의 사건, 기구한 사연을 하나의 서사로 엮었다.

'골든 에이지'는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다룬 작품이다. 2014년 4월16일 하나뿐인 손주를 잃은 노인의 마지막 선택이 담겼다. '공의 기원'은 2019년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이다. 축구공의 기원, 거대자본에 의해 개인의 노동력이 착취되는 문제를 짚었다. '해변의 묘지'는 대서양을 표류하던 한국인 선원, 과테말라 청년이 버뮤다 삼각해역에 흘러들어 동해 앞바다에 출몰하는 이야기다.

"그 배를 처음 발견한 것은, 동해항에서 출발하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크루즈 여객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생전 처음 크루즈 여행을 떠나던 칠십대의 노부부였는데, 마침 그 둘은,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즐겁게 떠들며 유람선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대부분의 승객들과 달리 뱃전에 나와 다투고 있던 참이었다. 평생을 내륙지방의 공무원으로만 일해온 남자의 간곡한 부탁때문에 부부가 유람선을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한 거긴 하지만, 아내는 이번 여행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해변의 묘지' 중)

"'만약 가능하다면, 자넨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자네의 골든 에이지, 그게 언제냔 말일세.' 내가 머뭇대자, 그가 쓸쓸하게 웃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 굳이 말해주진 않아도 돼. 하지만 상상해보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되돌아가 거기서 영원히 그 시절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인간은 어떻게 할까? 그런데 거기에 한술 더 떠 현재의 삶이 거의 지옥에 가깝다면? 그때 자네라면 어떤 선택을 할 거냔 말일세."('골든 에이지' 중)

김 작가는 "세계 곳곳의 도시마다 홀연히 나타나던 싱크홀을 보며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런데 싱크홀이 정말로 지구 깊숙한 곳을 관통하는 거대한 통로의 입구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난해 세상을 떠난 내 강아지를 아직 보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녀석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몸, 숨결이 이젠 여기 없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조각공원'을 쓸 때의 일이다. '골든 에이지'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진 거의 삼 년을 기다려야 했다. 글이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기 때문에." 284쪽, 1만3000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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