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말모이와 약초(若草)

입력 2019.03.07. 11:38 수정 2019.03.07. 11:49 댓글 0개
선정태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2본부

올 초 영화 말모이가 개봉됐었다. 1942년 일제가 한글을 연구하는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 인물들을 연행해 재판에 회부한 ‘조선어학회 사건’을 주제로 한 이 영화는 한글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을 그렸다.

일제는 1938년 ‘국어상용화’ 정책을 내세워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이후 1941년에는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인물들의 스토리가 영화의 주 내용이다.

영화관을 나오며 ‘선조들의 목숨을 건 노력으로 우리 말을 풍부하고 다채롭게 쓰고 있구나’하는 고마움을 다시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 ‘말모이’에 잘 나타나지 않아 간과했던 현실을 깨닫게 됐다.

최근 당시 광주욱공립고등여학교 1학년 100여명의 학생들이 1942년 겨울방학 숙제로 쓴 에세이 집‘약초(若草)’공개현장을 취재했다.

100여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며, 아니 정확히는 번역을 들으며, ‘당시는 일제 강점기라 어쩔 수 없이 일본어로 글을 썼구나’라고 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 여고생이 일본 설인 1월 1일에 쓴 글은 ‘제가 일본의 국민이라는 것이 강하게 와 닿는다. 감사한 마음을 안고 더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여성이 돼 천황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일본소녀에요’라는 제목의 글은 ‘매일 학교 조회에서 황국민의 자세를 외우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천황의 도움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이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자신을 일본의 소녀라고 밝혔지만, 이름은 조선인이었다. 당시 그 학교에는 조선여학생만 다녀 일본인은 없었을 것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부일매국노들이나 ‘일본에 도움이 되자’, ‘천황에 감사하자’라고 선동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지만, 아니었다.

어쩌면 글을 읽고 말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에 우리 글 대신 일본어를 배웠을 그 시대의 아이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일제가 시키는 대로 ‘일본이 최고다’, ‘천황을 위해 몸을 바치자’고 되뇌이며 세뇌당했던 아이들이 자신을 일본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일제는 우리의 설을 없앤 자리에 신정을 넣고, 조선인은 2등 국민이라는 생각을 심어 놓았다. 그 여파는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의 말과 글, 심지어 생각에 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줄 모르니 문제의식이 없어 고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들도 상당하다.

‘말모이’의 실제 주인공인 이극로 선생이 왜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라고 남겼는지 알 것 같다. 선정태 사회부 차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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