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樂]옛 선비들이 사랑했던 서원 나들이
입력 2019.02.28. 13:41 수정 2019.03.14. 15:27 댓글 0개3·1운동 100주기를 맞아 선열들과 애국지사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앞 다퉈 기념행사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역사의식 고취에 나서고 있다.
주말 시간을 이용해 자녀들과 광주지역에 흩어져 있는 서원을 찾아 탐방하는 것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소양을 쌓는데도 도움이 된다.
서원 생성 배경과 관련 인물을 재조명하며 선조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역사적 진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월봉서원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의 역사는 오래됐다. 왕도정치를 꿈꾸며 ‘사단칠정론’을 설파한 고봉 기대승 선생이 돌아가신 뒤 7년만인 1578년 호남 유생들이 지금의 신룡동인 낙암 아래에 망천사라는 사당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어 지금의 산월동인 동천으로 옮겼다. 효종 5년(1654년)에 ‘月峯(월봉)’ 이란 서원명을 내리면서 사액사우와 동·서재, 강당을 갖추게 됐다.
월봉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사원철폐령으로 폐쇄됐고 1941년 현재의 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짓고 1978년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을 건립해 1981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 고봉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행사인 춘·추향사제를 매년 3월과 9월의 초정일에 월봉서원 사당인 숭덕사에서 진행되고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무양서원
광산구 월계동에 있는 무양서원은 ‘무진의 볕’이라는 의미의 무진지양에서 연유한다.
무진의 ‘무’와 볕의 한자어인 ‘양’이 만나 무양이 됐다. 무양서원은 명현을 제사하는 사당과 교육을 담당하는 재의 역할을 겸하는 곳이다.
1927년 탐진 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 세운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 인종 때의 명신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해 그의 후손인 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와 문절공 유희춘, 충렬공 나덕헌 등 5명을 모시고 있다.
이곳은 서원 외에도 정자와 넓은 광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주변에 아름드리 거목들이 많아 지역민의 휴식공간으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광주시는 1987년 무양서원을 지방문화재 자료 3호로 지정했으며 매년 음력 9월6일에 제향을 하고 있다. 서원과 제례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날을 택해 찾는 것도 좋다.
운암서원
운암서원은 광주시 북구 화암동 무등산자락에 있다. 서원이 있는 화암마을은 한 때 200호에 이르는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현재는 40호 정도에 불과하다. 화암마을은 광주시내와 북구 충효동, 광주시내와 원효사 중간 지점에 있다.
운암서원은 해광 송제민(1549-1602)을 향사한 서원이다. 송제민은 정개청과 이지함 문하에서 수학하고 임진왜란때 김천일 휘하에서 의병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의 사후 광주 유림들이 그가 살았던 운암산(운암동) 아래 운암사라는 서원을 지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철거됐다. 문중에서 송제민의 묘와 제실이 있는 화암마을에 1998년 서원을 복설했다. 충민사 바로 아래에 있다.
벽진서원
벽진서원은 1602년 회재 박광옥 선생의 학덕과 절의정신을 추모한 후학들이 광주 서구 벽진동에 벽진서원을 창건해 향사와 교학에 힘써왔다.
1681년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추배하고 의열사로 사액됐으며, 뒤에 오두인, 김덕홍, 김덕보를 배향 해오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됐다.
후손들이 1927년 운리영당을 설립해 향사했음에도, 도시개발로 선생의 묘소와 영당이 편입돼 1999년 묘소를 이장하고 그 옆인 서구 풍암동 769-1번지에 운리사를 종중에서 복설하고 뜻있는 유림들과 학자들 그리고 종중이 벽진서원위패봉안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 곳을 벽진서원이라 하고 유림봉사를 결정하면서 선생의 위패를 모신 운리사를 의열사로, 학문을 강학하는 강당의 중앙에 벽진서원, 동쪽에 모현당, 서쪽에 숭본당이라 편액했다.
벽진서원에는 회재 유집목판(광주시 유형문화재 제23호) 유물을 소장한 시설들이 있으며, 초대 원장에는 일사 윤장현 선생이 맡았다.
양기생기자gingullove@hanmail.net
- 짱뚱어·칠게 시글시글··· 자연이 만든 '생태천국' 신안 증도 갯벌1004섬 신안 1섬1뮤지엄 ④증도갯벌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가뭇없이 아득했다. 이곳 날씨란 것이 원래 시시각각 다르다고는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왜바람에 당장이라도 후두둑, 굵은 빗방울을 흩뿌릴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은 희미한 바다의 실루엣을 더욱 검고 어둡게 만들었다.갯벌은 오래전부터 그렇게 있었던 듯, 훤하게 속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농게와 칠게는 불풍나게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흙장난을 치고, 멋모르는 낙지 한 마리, 물골에서 허우적댔다. 짱뚱어란 놈은 자기를 보아달라는 듯, 갯벌 위에서 펄쩍펄쩍 뛰기까지 하고 있었다.녀석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보자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비가 내리거나 성격 급한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놈들을 낚아야 할 것이었다. 서둘러 바구니를 등에 메고 갯벌로 걸음을 옮기니 미끄러지듯 펄 속으로 발이 박혀 들어갔다. 휘청-. 이제는 발이 박히는 것에 익숙할 때도 됐건만 매번 중심을 잃고 넘어질 지경이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더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갯벌에서 몇 걸음 옮겨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낚싯대를 폈다. 최근에 새로 장만한 '신식 낚싯대'를 보자 마음부터 오달졌다.20대 초반이나 됐을까. 짱뚱어잡이를 위해 처음 사용한 낚싯대는 대나무였다. 벌교며 여수, 순천 등 외지 사람들이 와서 짱뚱어를 잡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령 없이 낚싯대를 던지다 보니 무겁기만 하고 낚싯줄이 원하는 만큼 나가지도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썰물 때마다 갯벌에 나와 낚싯대를 던졌지만 허탕을 치기 일쑤였고, 이튿날도 맨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반복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씩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등에 멘 바구니의 무게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그는 새로 구입한 낚싯대를 길게 편 다음 원하는 곳 멀리까지 바늘을 던졌다.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끄는 동안 손끝에 미세한 감각이 전해지자 재빨리 잡아챘다. 낚싯바늘에 짱뚱어의 몸이 걸려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신안 증도 갯벌도립공원◆"갯벌은 삶의 터전… 복받았죠""새로 낚싯대를 사서 한번 해보니까 역시 좋아요. 하루하루 잡는 양이 달라지더라고요. 거기에 요령까지 더해지니 하루에 500마리 이상은 거뜬하게 잡을 수 있었지요.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짱뚱어에 관심조차 없었거든요. 그냥 갯벌에는 시글시글 흔하니까…."신안 증도 장고리의 이남창(85)씨는 짱뚱어 낚시의 산증인이다. 청년시절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증도에서 짱뚱어를 낚아 가정을 이끌었다.짱뚱어가 식도락가들에게 인기를 끌 때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신안의 식당마다 '짱뚱어'를 메뉴로 내걸었고, 물건을 대달라는 업주가 줄을 이을 정도였다. 이 씨가 사는 장고리에서만 5~6명이 함께 낚싯대를 던졌을 뿐, 많은 주민이 짱뚱어잡이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자신이 잡은 짱뚱어를 찾는 발길이 줄기 시작한 것은 수입산 짱뚱어가 들어오면서부터다. 평소 물건을 대달라고 사정하던 업주가 어느 순간 돌변해 "이제 당신과 거래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일이 있었다.하지만 이 씨는 개의치 않았다. 수입산 짱뚱어는 자신이 직접 잡은 것과 비교해 그 맛이 월등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입산 짱뚱어탕을 팔던 가게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면서 폐업 위기까지 닥쳤고, 다시 이 씨를 찾아와 짱뚱어를 달라고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이 씨는 업주의 행태가 괘씸했지만, "다시는 거래를 끊겠다는 말하지 않겠다"며 읍소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짱뚱어를 공급했다.짱뚱어는 봄에 보이기 시작하지만 낚시는 여름과 가을에 주로 이뤄진다. 짱뚱어가 살이 쪄서 맛이 가장 뛰어난 시기이기도 하다.신안 증도 짱뚱어가 유명해지면서 이를 겨냥한 외지인들이 발길이 이어졌다. 이웃 섬은 물론 무안이나 여수 등지에서도 짱뚱어를 잡기 위해 찾아오곤 했다. 이 씨는 "이 지역 것은 곧 내 것인데 왜 너희가 와서 잡느냐"며 쫓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안타까운 점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짱뚱어의 수가 주는 데다 수요 역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이 씨는 신안 증도의 갯벌이 곧 삶의 터전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로서는 복받은 것이지요. 누구는 짱뚱어를 잡고, 누구는 낙지를 잡으며 힘든 시절 견디고 생계를 유지했으니까요. 농사를 함께 짓기도 했지만 수입은 비교가 안 됐어요.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좋은 갯벌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요."갯벌박물관을 찾으면 갯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어로활동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숭어에 농게·칠게·짱뚱어·갯강구까지…갯벌은 조수가 드나드는 바닷가의 모래나 펄로 된 넓고 평평한 땅이 밀물 때는 바다가 됐다가 썰물 때 드러난 곳이다. 육상과 해양이라는 두 개의 생태계가 접하는 곳으로 두 세계의 완충작용뿐만 아니라 연안 생태계의 모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갯벌은 자연이 만든 천혜의 생명 보고(寶庫)다. 숭어와 농게, 칠게, 짱뚱어, 망둥어는 물론이고 총알고둥, 갯강구, 댕가리, 칠면초 등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여기에 노랑부리저어새 같은 희귀 조류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이 된다.바지락과 낙지, 꽃게, 굴, 백합 등 수집 종에 이르는 갯벌 속 청정자원은 갯벌에 터를 잡고 살아온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미래 자원이다.신안 갯벌은 가장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표 갯벌이다. 국내 전체 면적(2천482의㎢) 중 전남이 42.5%를 보유했는데, 신안에서만 14%(37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신안 갯벌은 대형 저서동물(底棲動物·산호나 성게, 조개, 새우 등 호수나 강, 바다의 바닥에 깔린 바위나 모래에 사는 동물)이 100종 이상 서식하는 곳으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5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어 2010년 1월 국토해양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선정됐고, 2011년 9월에는 우리나라에서 17번째로 람사르습지에 등록됐다.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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