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은퇴는 없다

입력 2019.02.25. 17:36 수정 2019.02.25. 17:43 댓글 0개
박인철 경제인의창 광주신세계 관리이사

요즘 유튜브 영상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는다.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10년 전에 방송된 전주MBC 보도특집 ‘은퇴는 없다’를 우연히 보게 됐다. 금년에 50에 접어든 필자도 정년 후를 생각할 때가 되어서인지 더 시선을 끄는 제목이었다. 저출산 고령화가 불러온 지구촌 곳곳의 사회 대변화를 실감하며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출산율이 1.2명 수준에 머물러 가장 저조한 나라가 된 스페인, 세계 최저 수준 대한민국과 가장 비슷한 길을 이미 걸어왔다. 스페인 남동부의 어느 한 농촌 마을은 남미, 북아프리카,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 비율이 무려 70%를 차지한다. 스페인 부모들이 아이 낳기를 꺼리자 일손부족이 심각해 졌고 스페인 정부는 이민을 받아들였다. 과거 스페인이 남미를 정복했다면 이제는 남미가 스페인을 집어 삼키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스페인과 함께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인 독일도 이민을 받아들여 국가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인구 대역전이 지구촌 곳곳에서 조용하지만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동유럽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폴란드의 젊은이들은 독일, 영국 스페인과 같이 젊은이가 부족한 나라로 떠나게 된다. 대학을 나온 청년들까지 더딘 경제성장과 날로 치솟는 사회 보장성 세금 때문에 해외 이민을 고민해야 한다. 고령화는 생산인구 감소로 이어져 소비부진과 투자 감축을 불어 왔고 결국 청년실업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인구 대역전의 충격은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금 부담을 두고 노소간의 갈등으로까지 치닫는 형국이다. 이런 혼란 속에서 폴란드의 젊은이들은 해외 이민을 통해 나라를 등지고 있다. 청년들이 빠져 나간만큼 폴란드 사회는 여성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폴란드는 일하는 중년여성의 사회 참여로 경제를 살찌울 수 있었지만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있다. 폴란드는 1.22명으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체제 전환 이후 출산율은 계속해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정부의 지원 부족과 육아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기업 문화에서 찾고 있다. 어려운 육아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폴란드의 현실은 지금의 대한민국과 너무나 닮아 있다.

2천800만 명이 노인이 된 나라, 일본은 지구촌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 국가에 돌입했다. 급격한 고령화는 의료보험 재정악화를 불러와 일본 사회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웬만한 직장인은 월급의 10%를 의료보험과 노인요양 보험료로 지불해야 한다. 20년 전부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한 일본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로 긴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우선 정년을 65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본인이 희망할 경우 재고용해 80세까지 일하도록 하는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아예 정년이란 개념을 없애고 있다. 정년파괴 즉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평생 일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있다.

일본 민간 기업에서도 고령자 일자리를 위한 획기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일흔을 넘긴 할아버지가 매장을 찾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는 도쿄가스에서 60세까지 일하고 은퇴를 했지만 3년전 그리운 회사로 다시 돌아 왔다. 때때로 매장을 방문한 손님에게 신제품을 소개하고 한가할 때는 전화로 판촉활동을 벌인다. 은퇴자를 연결해주며 일자리 틈새시장을 개발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실버인재센터라고 부르는 노인 일자리 센터는 도쿄시내에만 57개 사무소가 있다. 8만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연간 40만 건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2~3시간 되는 일거리는 젊은이들이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일반기업에서도 노인들에게 일을 맡기려고 한다. 노인들의 사회 참여는 점점 굳어져 가는 일본경제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스페인도 공무원의 정년이 65세다. 법이 개정돼 자신이 원하면 70세까지도 퇴직을 늦출 수 있다. 이를 위해 65세 이후로 정년을 1년씩 연장할 때마다 연금을 2%씩 늘려주는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다. 은퇴는 곧바로 세금 수입의 감소와 국가 연금 고갈로 이어진다. 정년 연장은 스페인만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다. 핀란드도 정년연장을 68세까지로 추진해 경기 침체를 극복했다. 독일도 고령인력 활용 방안을 발표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정년파괴는 전 EU국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일이다.

IMF를 전후로 50줄에 접어들면 은퇴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심각한 인력부족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1958년생들이 공식적으로 은퇴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도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6년 동안 518만 명이 은퇴에 들어간다. 고령층이 점차 부족해질 생산인력을 대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고령사회의 중장기 해법이다. 65세 넘어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취미와 소비활동을 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에게는 은퇴는 없다. 지금시대에 은퇴세대들의 일거리를 만드는 일,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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