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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백년과 여성]②김순애는 누구…임시정부 다방면 지원 '숨은 공신'

입력 2019.02.24. 06:00 수정 2019.02.24. 14:51 댓글 0개
만석꾼 대지주 집안서 근대교육 혜택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해 외국어 익혀
독립운동가 김규식 혼인해 본격 활동
망명 기간 내내 임시정부 다방면 지원
1919년 상해 부인회 창설해 회장 맡아
외곽단체 의용단과 대학적십자 조직
1945년 임정 요원 1차 환국 때 귀국해
【서울=뉴시스】노년의 김순애 지사. (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서울=뉴시스】안채원 기자 = 김순애는 1889년 5월12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만석꾼으로 지역에서 이름 난 대지주였다. 마을에선 이 집안을 '김참판댁'이라고 불렀다.

김참판댁은 마을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근대문물을 수용한 집안이었다. 이 덕에 김순애의 형제자매들은 근대 교육의 혜택을 받았고 다수가 민족운동과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그의 둘째 오빠 김윤오는 1906년 구국계몽운동단체인 서우학회의 발기인이었다. 셋째오빠 김필순은 의학교육을 받고 안창호와 가깝게 지내며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여동생 김필례는 기독여성단체인 한국 YWCA를 창설했다. 조카인 김마리아는 여성독립운동가로 상해임시정부에서 활약했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의 김순애의 삶은 어쩌면 필연적이었다.

김순애는 서울 의학교에서 수학하는 셋째오빠의 권유로 상경했다.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의 초령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한국사 교육을 엄격히 금지하던 당시 김순애는 몰래 자신의 하숙집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지리와 역사를 가르쳤다. 자신의 교육활동이 몇차례 발각되고 105인 사건으로 안창호를 지원하던 셋째오빠가 체포 위기에 처하자 김신애는 1911년 만주 통화현으로 망명했다. 기나긴 망명 생활의 시작이었다.

망명 기간 동안 김순애는 1915년 9월 난징의 중화명덕여자학원에 입학했다. 중국어와 영어는 그곳에서 익혔다. 그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이후 외교활동을 나서는 데 큰 무기가 됐다.

【서울=뉴시스】김순애 지사의 남편 김규식 독립운동가. (사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순애의 본격적인 독립운동은 1919년 독립운동가 김규식과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시작한다. 이들 부부는 여운형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상해로 거처를 옮기고 국내와 만주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망명시기 내내 김순애는 임시정부의 활동을 다방면으로 지원했다.

1919년 상해지역 부녀자들을 모아 상해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돼 한국 지도와 태극기를 제작하거나 대내외 임시정부의 선전 활동을 했다. 1920년 1월에는 무장투쟁적 성격을 띠는 임시정부 외곽단체 '의용단'을 조직했다. 같은 시기 대한적십자를 조직해 간호원양성소를 열어 독립전쟁에 필요한 의사 양성을 지원하기도 했다. 1926년에는 안창호 등과 함께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발족해 임시정부에 대한 자금 지원에 힘썼다.

일제 강점기 후반인 1943년 2월에는 중경에 있는 각계 부인 50여명과 함께 대한애국부인회 재건대회를 개최했다. 김순애를 주석으로 추대한 부인회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7개 항의 남녀동권향유강령을 발표했다. 이들은 포로수용소를 통해 넘어오는 동포 여성들을 상대로 하는 계몽 운동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김순애는 같은 해 3월 워싱턴회담에서 독립 전 한국을 국제 감시 보호 아래 두기로 합의했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는 부인회 대표로 재중국자유한인대회에 참가해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뉴시스】한국애국부인회 재건선언을 다룬 1943년 6월3일자 '신한민보'. 주석에 김순애 이름이 기재돼있다. (사진 =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김순애가 조국 땅을 밟은 것은 1945년 11월23일 임정요원 1차 환국 때였다. 귀국 후에는 교육계에 몸을 담았다. 1946년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의 재단이사장으로 취임해 평이사를 역임하고 1962년 사임했다.

남편 김규식은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이승만과 대립하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됐다. 남쪽에 남은 김순애는 남편의 행적을 수소문했다. 끝내 남편의 행적을 알지 못한 채 김순애는 세상을 떠났다. 1976년 5월17일, 향년 87세였다.

▲참고자료: 독립기념관 <한국여성독립운동>(1989), (사)3.1여성동지회 <한국여성독립운동가>(201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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