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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18세’ 좋아지는 이유
입력 2016.01.27. 08:24 수정 2016.01.27. 08:34 댓글 0개청소년도 시민이다. 그렇지만 야당이 요구한 ‘선거연령 18세 인하’ 개정은 멀어져가고 있다.
청소년의 ‘참여’ 경험이 없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투표권·피선거권 등의 연령제한은 청소년이 미성숙하므로 누군가가 모든 권리를 대리하라는 절대 제한이 아니다.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하지만, 청소년들 역시 시민인 것은 당연하다.
청소년이 학생 신분이고, 수업권이 방해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모순이다.
성숙한 국민에게만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권리를 주지 않는다. 직장인이 업무에 방해된다고 참정권을 제한하지 않는다. 미성숙한 학생이라는 이유로 참정권을 제한할 수 없는 논리이다. 국가가 의무교육을 하는 본래 목적은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2011년 기준으로 232개 국가 중 215개 국가 93%가 18세를 선거연령으로 정하고 있다. 올해부터 OECD 3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모든 국가가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정하고 있다. 일본이 작년 선거권자 연령을 현행 ‘만 20세 이상’에서 ‘만 18세 이상’으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회에게 선거연령 기준 하향을 검토하라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9세 미만자 모두가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는 것도 아니며, 선거 관련 정보를 얻고 투표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학업에 지장을 줄만큼 많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한, 교육이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민주국가의 발전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할 때 위와 같은 우려는 교육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참여’는 이제 우리만의 고민이 아닌 국제적 차원에서 청소년 정책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필수적인 요건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참여는 자양분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사회적 부담이 증가되고, 저성장에 따른 청년 취업난의 고통이 가중 될수록 복지국가의 지속성은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참여’는 청소년에게 우리사회가 직면한 세대 간 갈등, 이념갈등, 계층갈등, 지역갈등, 경제적갈등을 민주주의 소통의 방식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시민으로 성장하게 한다. ‘참여’는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긍정적 힘이 된다.
덴마크, 독일,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의 경우 대부분 우리나라와는 달리 지식 전달보다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것을 더 중시하고 있다. 공교육 과정에는 ‘시민교육’이나 ‘정치교육’과 같은 형태로 시민성 교과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과정에 ‘시민성’의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시의회에서는 초중고 학교 학생 대표들이 참여하는 청소년회의(the Voice of the Young Mayor’s meeting)가 열리며, 시 예산 중 일부를 이 회의를 통해 배분하고 별도의 의결 과정 없이 집행하고 있다.
영국은 시민교육을 필수교과로 하여 공평, 정의, 평등, 권리와 같은 시민교육의 덕목을 익히고, 학교와 학교위원회 정책 결정에 있어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이웃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연대, 커리큘럼에 제시된 시민교육의 덕목이 골고루 분포되어 학생들에게 학습과 체험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청소년 참여는 공감대와 필요성에 대해서 광범위한 이해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의 투표율 감소로 인한 대의민주주의 가치가 위협받을 것이고 시민사회국가로 가는 중대한 위험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은 더 이상 미래시민이 아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권장되고 시민권 실현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각으로 청소년시민교육과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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