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천관산

입력 2019.02.12. 16:47 수정 2019.02.12. 16:51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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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린 면류관을 쓴 뫼요. 그래 그런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소’ 촌로의 말씀이다. 관산읍과 대덕읍을 잇는 해발 723m 높이지만 지리산, 내장산, 변산, 월출산과 더불어 호남 5대 명산의 이유가 있을 듯하다. 큰길을 돌아드니 샛길이 깊다. 양옆으로 돌탑이 마주한다. 1998년 도립공원 지정에 지역주민들이 단풍나무를 심고 400여 탑을 쌓으며 가꾼 흔적이다. 그 끄트머리에 문탑이 우뚝하다. 15m 높이에 이 고향 오십여 문인들의 소망을 담았다.

문학공원 위로 동백나무가 이어진다. 산중이라 추운지 아직 꽃망울도 맺지 않았다. 계곡 옆으로 반야굴이 처음이다. 바위를 지붕삼아 처마를 잇고 벽을 쌓아 문을 달았다. 만상의 이치를 깨우친 부처님(반야여래) 좌상이 희미한 불빛 안이다. 굿판을 벌이는 통에 산불이 위험하다며 굳게 닫아버렸다. 선방체험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타깝다. 산죽 위로 높게 자란 참나무 6형제와 비자나무, 사스레나무가 빼곡하다.

그 하늘을 오르니 보이지 않던 천상의 공간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불교 태동지라는 탑산사다. 문 없는 문을 들어선다. 통일신라 때 창건됐고 의상대사와 육신불 침굉선사가 수행했던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 천관보살이 설법했던 곳이다. 세종대왕의 둘째 유(수양대군, 훗날 세조)가 석가의 일대기를 한글로 자세히 기록한 석보상절에 나와 있고 동문선, 동국여지승람, 지제지의 기록이다. 하늘이 내렸는지, 사람이 쌓았는지 5층 아육왕탑이 경이롭다. 과거 7불의 하나인 가섭불이 좌선한 자리도 있다. 경주 황룡사 가섭불연좌석과 같은 맥이다.

자장의 불국토 ‘부처님의 깨달음을 끝없이 이행하는 세상’의 믿음이다. 아육왕은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아소카왕의 한역이다. 불교 포교에 힘쓰며 진신사리 서말 서대를 8만4천개의 통에 담아 각처에 불탑을 세웠으니 중국에 열아홉, 우리나라에도 천관산과 금강산에 두었다. 이곳 탑산사는 한때 89암자를 이끌며 큰절이라 불렸다. 그 내력을 도성 스님으로부터 듣다보니 색다른 기운이 난다. 침향 차와 해우에 만 백설기가 시간을 잡는다. 안개 자욱한 앞 바다 위로 섬섬들. 청산도와 금당도가 저기란다.

인간의 생각에는 늘 시대상황이 융합되듯, 우리 불교에도 중국의 노장사상과 토속신앙이 들어왔다. 그 시작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 중국에서, 백제 침류왕 1년(384년)에 인도 마라난타가 영광 법성포로 들어와 불갑사를, 가야국 김수로왕에게 인도 아유타국 공주가 부처님을 모시고 와서 왕비(허황옥)가 되었고, 부처님 제자가 한라산 영실 존자암에서 직접 포교를 했다고도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선을 닦으면 되는 것인데, 사람의 기록이니 그러지 못한 일들도 많았을 게다.

가파른 데크 길과 바위를 서둘러 오른다. 구룡봉이다. 구덩이 여럿이 아직 얼음 창이다. 푹 파인 돌굴에 차양을 치면 별빛이 스민다는 자리다. 바람길 옆으로 큰 돌기둥이 진죽봉이다. 만권의 책이 겹겹이 쌓였다는 환희대에 오르니 내가 대장이다. 다른 30여개 기암에도 사자바위, 거북바위, 상적암, 문주보현암 등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 끝자락에 정남진수목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분주하고 수동제도 찰랑거린다. 또 천관산 야생란으로 종자돈을 만들어 억대부농을 일으킨 성산인, 이십여 년 전에 이미 스마트 팜을 시작한 청하영농에서 삼색 파프리카를 따는 100여명의 일손도 바쁘다. 오래도록 일어나는 장흥의 한 축이다.

1597년 8월 이순신 장군도 있었다. ‘금신전선 상유십이’ 12척의 배로 통제사에 재 취임한 곳이 회령포(회진)다. 한 달 후에 명량대첩을 이끌었으니 꺼져가던 조선을 살린 기반이었다. 그날 장군은 산성아래 주막에서 졸복탕과 말린 붕장어 무침에 막걸리를 내게 하여 군관들과 지친 몸을 풀었다. 오늘날 성화식당이 된 의향의 터에서 하늘수 막걸리를 더해 푸짐한 상이 차려지니 지난 주말 출출했던 길손의 배를 채운다.

이 땅은 문림이기도 하다. 관서별곡을 지은 기봉 백광홍은 가사문학의 효시였고 이청준, 한승원을 이어 한강까지 등단한 작가만도 120명을 넘는다. 예부터 천관산은 ‘돌로 생긴 기묘한 경치다. 관세음보살이 돌로 만든 배에다 진경을 실어왔다. 천풍과 지제가 쌓여 복덕이 깃든 곳이다’했으니 이곳의 산과 바다, 풀과 사람, 대지와 바람이 그렇게 만들었을 거다. 가히 신산이라 할만하다. 봄 진달래, 여름엔 푸르고, 가을 억새와 단풍, 겨울 동백이 꽃이 되는 곳, 최근에는 동서의학이 하나로 만나 세계 최고의 치료시설을 갖추었으니 누군들 한번쯤 쉬어가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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