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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옛 전남도청 복원과 유사 사례들
입력 2019.01.27. 17:04 수정 2019.01.27. 17:07 댓글 0개5월 항쟁 최후의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복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아시아문화원에서 발주한 옛 전남도청 복원기본계획수립 용역이 사실상 마무리되어 최종보고만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복원기본계획이 수립되고 나면 이후 실시설계가 이루어지고 공사가 진행되겠지만 이 시점에서 이 복원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유사 사례들을 통해 살펴보면 향후 활용계획과 관련하여 의미가 클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및 기념관들 중에는 지역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는 곳들이 있다. 대구의 2·28기념 중앙공원, 대전의 3·5대전민주의거공원, 마산의 국립3·15민주묘지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역성을 가진 민주화운동 기념시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민주주의 수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사적에 원형 훼손이 있을 경우 그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정서적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옛 전남 도청은 5월 항쟁을 대변하는 광주시민의 지역 정서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옛 전남도청의 복원은 광주시민에게 정서적 안정은 물론 5월 항쟁에 대한 자부심을 보다 깊이 느끼게 해줄 것이다.
둘째, 민주·인권·평화개념은 보편적 정의(正義)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이 이천의 민주화운동 기념공원이다. 이곳은 정부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16년 6월 조성한 공원인데 민주화 운동의 객관적 사실을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공간과 콘텐츠를 제작 설치하여 민주화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옛 전남도청이 복원되어 다양한 전시공간과 콘텐츠가 제작 설치되면 민주 인권 평화를 위한 전국적인 체험학습장과 교육의 장으로서 그 기능을 발휘할 것이다. 5월 항쟁은 광주에서 발생하기는 하였지만 탈지역적 보편성을 띤 민주화운동이기 때문이다.
셋째, 평화의 소녀상을 통하여 민주·인권·평화 관련 시설물은 공간적 반응이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알리고 미래세대에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하고자 설치된 것이다. 비록 조그마한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그 공간적 반응은 지대하다. 옛 전남도청이 복원되면 그 규모가 크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의 상징성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다.
넷째, 민주화운동 관련 사적지 중에는 비극적이거나 영웅적인 사연이 있는 곳이 변형되었다가 그것을 복원하려는 강력한 힘으로 다시 복원된 곳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서대문형무소이다. 서대문형무소는 1992년 서대문 독립공원 조성 시 무분별한 철거와 조경시설 도입으로 인해 사적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국민적 요청에 따라 과거 서대문형무소의 원형으로 복원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민주·인권·평화 사적지는 훼손한 만큼 원형의 상태로 복귀하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옛 전남도청 역시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가 다시 원형으로 복귀하려는 강력한 힘이 작용된 사례이다.
다섯째, 민주화운동 사적지는 원형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당성과 필요성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는 교훈을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이곳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을 전 세계에 산재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처럼 국가범죄와 인권유린의 흔적을 보존하는 곳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옛 전남도청이 복원되면 이곳 역시 민주주의를 위해 많은 시민들이 산화한 곳으로서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한국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될 것이다.
여섯째, 전형적인 다크 투어리즘의 적소로서 꼽히는 곳으로서 제주 4·3평화기념공원을 들 수 있다. 이 4·3평화기념공원은 4·3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기 위한 기념공간이다. 옛 전남도청의 복원은 현재 광주 전남의 많은 5.18사적들과 함께 다크 투어리즘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본다.
옛 전남도청의 올바른 복원 방향은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재건축하는 것이고 나아가 이곳에 다양한 전시공간과 콘텐츠가 제작 설치되어 관람객들이 숭고한 민주정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면밀하게 준비해나가야 할 것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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