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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부모, 건강한 자녀
입력 2015.12.09. 08:32 댓글 0개첫눈이 내리고 남은 한 장의 달력은 올 한 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데 충분한 모티브가 된다.
지금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녀들의 사고나 행동의 변화로 인해 점차 부모들의 역할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가고 있다.
우리 가정에서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부모와 자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간다면 부모를 통해 자녀들은 삶을 더욱 윤택하게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부모들의 건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준비 없이 부모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들에게 양육 받은 대로 자녀들을 양육한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방법이라면 자녀들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고통과 고문의 연속이 된다.
얼마 전에 아버지의 폭력으로 가출을 밥 먹듯이 한 중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형을 심하게 폭행한 모습을 보며 자라온 터라 아버지에게 매우 심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경험하게 되자 사소한 잘못일지라도 처벌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가출을 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어울려 절도 등을 저질러 소년분류심사원에 위탁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 아이의 잘못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가끔 가정폭력을 저지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그 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방식이 단순하다. 자신의 분노나 화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 발산한다. 또한 대인관계가 매우 제한적이다. 자신의 고민이나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들이 없다. 이런 사람들의 과거사를 듣다 보면 부모들의 양육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악순환은 우리 자녀 세대에게는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건강한 부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든 올포트는 건강한 성격발달이란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각자가 특유하고 개별적인 방법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통 성숙한 사람은 여섯 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성숙한 사람은 넓게 확장된 자아감을 가진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요구나 욕망에만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직업, 가족, 인간관계, 취미 등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그와 같은 활동에 의미 있게 참여한다.
둘째,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애정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소유욕이나 시기심이 아닌 자신의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과 깊은 이해심을 보이는 사람이다.
셋째, 정서적인 안정감이다. 원만하고 성숙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수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의 안녕을 방해하지 않고 표현하고 이겨낸다.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신념이나 기분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의 정서 표현에 대해서도 위협으로 지각하지 않는다.
넷째, 성숙한 사람은 현실적으로 지각하고 현실적인 기술을 소유하여 그것을 활용하여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고 사람이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자신의 욕구나 상상에 맞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객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사람은 타인, 대상, 사람, 상황 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현실에 대처할 충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중요하면서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 하는 사람이다.
다섯째,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사람이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을 객체로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남들이 보는 자신과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일들을 초연하게 웃어넘기면서도 여전히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사람은 자신 삶의 의미를 분명하고 일관성 있게 체계적인 방식으로 바라보고 통합할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지배적인 가치관을 갖추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현재 우리는 어제나 그제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자녀들도 마찬 가지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속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의 나를 지속적으로 완성시켜 나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과거에 갇혀 고통받지 않고 매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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