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와불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전설

입력 2019.01.21. 14:16 수정 2019.01.25. 11:40 댓글 0개
자유분방해서 더 편하고 정겨운 절집 화순 운주사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눈이 내리는 운주사. 원형다층석탑 옆으로 여행객이 지나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선입견을 갖고 산다. 여행지에 대해서도 편견이 작용한다. 이런 선입견을 보란 듯이 깨주는 절집이 있다. 화순 운주사다.

절집을 생각하면 깊은 산속이 먼저 그려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웅장한 대웅전, 스님과 염주, 근엄한 불상과 정교한 석탑도 떠오른다. 발걸음도 왠지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운주사는 다르다. 찾아가는 마음가짐부터 부담이 없다. 절집이 소박하고 아름다워서다.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은 틀에 박혀 있지 않다. 골짜기와 산등성이, 바위 밑에 널브러져 있다. 흡사 겨울날 햇볕바라기를 나온 가족들 같다. 절집에 담장이나 부도도 없다. 대웅전도 으리으리하지 않다.

▲석조불감 

민중해방·미륵신앙의 성지로

운주사의 석탑과 석불 하나하나는 언뜻 거칠어 보인다. 그러나 어떤 열망으로 가득 찬 느낌을 준다. 묘하게도 역동적인 힘까지 안겨준다. 화려하지 않은데, 유난히 오래도록 기억에도 남는다.

운주사는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널리 알려진 절집이 아니었다. 소설가 황석영이 한 신문에 연재했던 대하소설 ‘장길산’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주인공 길산이 여기에다 천불천탑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면 민중해방 세상이 열린다는 줄거리였다.

하지만 끝내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운주사의 전설을 토대로, 소설 속에서 운주사를 ‘실패한 혁명의 땅’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 절집이 1980년대 이후 변혁을 바라는 우리 정서와 버무려지면서 미륵신앙의 성지로 떠올랐다.

새벽닭이 울어서 불상을 세우지 못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신라 말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다. 천불천탑을 세우는 도중에 한 동자승이 장난삼아 낸 닭울음소리에 석수장이들이 날이 샌 줄 알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얘기다.

도선국사가 지형을 봤더니, 운주사 일대가 장차 임금이 나올 군왕지였다. 그 혈을 끊어놓기 위해 탑을 세웠다. 지형이 배가 움직이는 모양새였고, 그대로 두면 배가 심하게 흔들려 국운이 빠져나갈 형상이라는 얘기다. 배를 젓는 노의 위치에 천불천탑을 세웠다.

▲거리의 불상들

운주사 석탑과 석불의 매력

운주사에는 현재 97기의 석불과 석탑이 남아 있다. 불상이 80기, 석탑이 17기다. 석탑과 석불의 생김새는 각양각색이다. 일정한 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생겼다. 운주사 석탑과 석불이 지닌 매력이다.

석탑은 대부분 자연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호떡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탑도 있다. 다듬지 않은 돌을 크기대로 그냥 올려놓은 것 같다. 원형다층석탑은 제사 때 쓰는 제기 위에 떡을 포개놓은 것처럼 보인다. ‘떡탑’이라 불린다.

석불도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고 서 있거나 앉아있다. 얼굴은 홀쭉하거나 동그랗다. 코가 닳아서 떨어져 나간 것도 있다. 눈매는 희미하거나 비대칭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못생겼고, 우습게 생겼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간다. 그 석불과 석탑을 하나하나 껴안아본다. 볼을 살포시 대보기도 한다. 거친 느낌이 좋다. 석불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석불을 조각하던 석공들의 정과 망치소리도 들려오는 듯하다. ​

▲9층석탑과 석불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