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여수야화(麗水夜話)

입력 2019.01.06. 16:28 수정 2019.01.06. 16:39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무등일보 주필

지난 시절, 우리나라에는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 참 많았다. 가사 내용이 체제에 반해 불온하다거나 곡조가 선정적이고 방정맞다는 이유 등으로 그렇게 제재를 당했다. 노랫말을 지은이나 곡을 만든 이들의 수난은 말할 것도 없고 압제에 시달린 대중들이 그러한 노래들이나마 따라 부르며 수상한 세월을 넘기려하는 것도 쉬 허용되지 않았다.

금지곡(禁止曲)의 역사는 1949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 박정희 독재에 훨씬 앞서 이승만 정권은 노래 하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인 ‘여수야화(麗水夜話)’가 그것이다. 김초향이 노랫말을 만들고 이봉룡이 곡을 붙였다. 당대의 가수 남인수가 불렀던 이 노래는 여수·순천에서 발생했던 ‘여순사건’(1948년 10월 19일)과 관련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여수야화의 가사가 불순할 뿐 아니라 민심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고 해서 음반 판매는 물론 공연까지 금지시켰다. 나아가 악보 출판과 방송 등에서의 노출도 불허했다. 1960년대 이후 금지곡을 지정 관리했던 정부 기관인 공연윤리위원회와 방송윤리위원회의 금지곡 목록에도 등장하지 않을 만큼 원천적인 금지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여순사건은 당시 여수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진압명령에 불복종해 일으킨 사건으로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사의 비극적 사태였다. 이승만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반공국가를 구축했다. 이승만 정권을 비롯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독재 치하에서 오랫동안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리다가 1995년부터 ‘여수·순천사건’또는 ‘여수·순천 10·19사건’으로 정정됐다.

‘제주 4·3사건’은 정부측의 공식 사과(노무현 전 대통령)와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희생자 신고, 유해 발굴 작업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수·순천사건’은 여전히 어두운 역사의 저편에 묻혀있다. 수많은 양민 학살을 낳은 비극임에도 7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여수시의회가 지난해 여순사건 위령사업 지원 조례 제정에 이어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채택하고, 전남도의회도 여순사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국가 차원의 진상 규명과 특별법 제정 촉구 움직임이 일고있는 정도다.

‘여수야화’의 가사는 당시 사건으로 남편을 포함한 가족을 잃고 집도 잃은 아낙네의 넋두리를 담아냈다. ‘무너진 여수항에 우는 물새야’로 시작해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다 풀릴 것 같았지만(왜놈이 물러갈 땐 조용하더니), 분단과 이념 대립으로 인한 민족 내부의 갈등(오늘에 식구끼리 싸움은 왜 하나요)을 은유했다. 김영태 주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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