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하루 10만원 모으기가 이리 힘드네요"

입력 2018.12.14. 19:22 수정 2018.12.15. 20:22 댓글 1개
[무등Magazine] 썰렁해진 연말 구세군 냄비
날은 추워지는데…은은한 종소리 관심 못 끌어
“저보다 힘든 사람 많아 기부하니 맘이 편해요”
하루 10만여원 모금…액수보다 행동에 감사
“땡그랑…땡그랑” 광주 구세군이 최근 시종식을 열고 본격 모금활동에 들어간 가운데 광주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시민과 어린이들이 구세군 냄비 모금함에 동참하고 있다. 오세옥기자

뺨을 스치는 칼바람에도 대로 한가운데를 우두커니 지키고 선 빨간 냄비를 볼 때, 그리고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올 때 행인들을 새삼 깨닫는다. 연말이 찾아왔음을.

그러나 기부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구세군 냄비는 요즘 좀처럼 관심을 끌지 못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어려운 형편 탓일까.

그 실태를 직접 확인하려 지난 14일 오후 2시 광주충장로우체국 앞 구세군 교인 나병선(75)씨의 거리모금활동에 함께했다.

한낮인 오후 2시지만 건물 사이로 불어오는 강한 바람으로 행인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외투를 여미느라 팔짱을 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새빨간 패딩 점퍼를 입고 종을 든 나씨는 몸을 웅크리는 대신 꼿꼿이 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주시한다.

매일 정오에 시작되는 구세군 모금 활동은 오후 8시까지 계속된다. 추위 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온 나 씨는 곧장 손에 들린 종을 흔들며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따뜻한 성원이 큰 희망과 도움이 됩니다.” 마이크를 잡고 성금 멘트를 이어나가는 나씨는 쌀쌀한 날씨에도 추운 기색 없이 따스한 성원을 요청했다.

“요 몇년 사이 경기가 좋지 않아 기부 심리가 약해졌어요.” 그는 불황으로 얼어붙은 시민들의 마음이 곧장 냄비안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1990년대부터 교단에 들어와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구세군 광주시 모금본부는 지난 1938년 창설 이래 연말마다 한결같이 충장로우체국 앞에서 모금활동을 진행해 왔다.

올해는 창설 80주년을 맞는 해다. 나씨도 30여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충장로가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줄어드는 인파속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4~5년 전만해도 지폐뭉치를 넣고가시거나 봉투를 넣고가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14년 전인가, 한 청년이 수표로 17만원을 넣고 사라진 경우도 있었죠. 혹시 실수로 넣지는 않았을까 내내 미심쩍기도 해서 은행에 주인을 찾아달라고 요청도 했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어요.” 기부문화가 자연스러웠던 옛날의 모습과 지금이 확연히 대비된다는 그의 설명이다.

나 씨의 설명 도중 한 행인이 모금함에 지폐 한 장을 넣고 갈길을 서두른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박 모(38)씨다. 그는 지난주 터미널에서 사랑의열매 모금현장을 목격했으나 바쁜 일정을 챙기느라 기부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었다고 전했다. 이어 “오늘 시내에서 걷는데 구세군 종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정말 반가웠어요. 마침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넣었어요”라고 모금 배경에 대해 밝혔다.

이어 “금액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삶이 힘들지만 저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요. 기부를 하니 마음이 편하네요”라고 웃으며 전했다.

뒤이어 앳된 모습의 커플이 모금함에 자선의 손길을 뻗친 후 종종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구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밝힌 박주은(19·여)양에게 기부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하던 일이라 이젠 익숙해요. 특히 매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모금하는 곳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하게돼요.”

주은 양과 함께한 양준(19)군은 모금에 대해 “큰 금액의 기부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우리처럼 적은 금액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금현장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나 씨는 모금에 참여한 행인들을 향해 매번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넨다.

나 씨는 “보통 차려입으신 분들보다 형편이 어려우신 분들이 모금함에 많이 기부해주시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향해 동하는 심정이 함께 했을 것이라는 그의 분석이다. 그 외 엄마 손을 잡고 시내구경을 나온 아이들이 모금함에 기부하는 등의 모습이 주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매번 이렇게 따뜻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구세군은 기부 인원만큼 길을 묻는 행인들을 마주하는 경우도 많다. 모금함에 잔돈을 투척하듯 기부하는 행인들도 종종 있다. 지나가다 모금함이 보이길래 아무 생각없이 동전들을 넣었다고 전한 박 모(21·남)씨는 “주머니에 잔돈이 있으면 습관적으로 넣는다”고 말했다. 기부에 대해서는 “적은 돈이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습관적으로 넣기 때문에 별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 씨는 “의도가 어떻든 좋은 일에 쓰이게끔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모금활동을 시작한 지 3시간 정도가 지났지만 겨우 10여명만이 모금에 참여했다.

나 씨가 맡은 충장로우체국 앞의 모금함에는 하루 평균 50만원 정도가 모인다.

주말의 경우 100만원 남짓하는 성금이 모이기도 하지만 이 날은 비가오는 등 궂은 날씨로 예정된 시각보다 앞당겨 철수하게 됐다. 이날 총 모금액은 10여만원 남짓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씨는 “해마다 참여해주시는 인원들에 감사를 느낀다”고 말했다. “액수에 대한 큰 바람은 없어요.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시민들의 모습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씨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구세군 광주시 모금본부는 오는 24일까지 충장로우체국 앞을 비롯해 유·스퀘어 터미널 등지에서 모금활동을 진행한다.

이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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