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일본 속에 핀 한국 문화

입력 2018.12.13. 16:20 수정 2018.12.13. 16:24 댓글 0개

일본은 1941년 12월 7일 아침 350여대의 비행기를 동원해 하와이를 전격 침공했다.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느긋하게 휴일을 즐기던 미군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폭격 2시간여만에 전함 8척, 순양함 8척, 유조함 2척, 비행기 188대 등 미군의 전략무기가 파괴되면서 속절없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태평양전쟁의 서막이었다.

이즈음 대한민국 임시 정부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틀만인 12월 9일 대일 선전 포고를 하고 나섰다. 상해 임시정부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 명의로 일본과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 선전 포고는 임시 정부 26년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1940년 출범 당시 광복군은 30명에 불과했다. 무기도 변변치 않았지만 조선의용대 일부 세력과 중국 국민당의 군사 원조를 받아 그런 대로 체계를 갖추었다.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하자 이때 한 선전 포고를 근거로 “우리도 연합군의 일원으로 조인에 참여해야 한다”고 당당히 주장 할 수 있었다. 일본의 반대로 일본과의 강화 조약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일 선전포고는 광복군이라는 무장 병력 30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로부터 77년. 일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툭하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가 하면 아이돌 문화까지 시비를 건다. 쪼잔하게 방탄 소년단이 입은 셔츠 문양까지 시비다. 방탄 소년단이 “조국 광복을 기리기 위해 입었다”는 티셔츠를 “일본 원폭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시비하는 것이다. 그 만큼 일본사회서 우익세력이 득세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방탄 소년 7명의 전사들은 일본 대중들을 정면으로 공략해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일본 문화의 심장이라는 요미우리 돔구장에서 매진 사례를 보여 주었으니 대성공이었다. 우익의 시비를 보란 듯이 넘은 그들이 자랑스럽다. 여성 걸그룹 트와이스도 일본 연말 특집 프로그램 NHK 홍백 가합전에 2년 연속 출연하고 내년 봄에는 해외 가수 사상 데뷔 후 최단 기간에 도쿄 돔에 입성한다.

이 정도면 30명으로 대일 선전 포고를 한 김구 선생 뵐 낯이 조금은 선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우리 무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 하면 되고 오직 한 없이 갖고 싶은 건 문화”라고 했다. 방탄 소년단과 트와이스 활약을 이미 예견 한 듯하다. 타임지가 설문조사한 ‘올해의 인물’에 방탄 소년단이 당당히 1위로 꼽혔다. 언론인 카슈끄지에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쟁쟁한 인물 들을 제치고 올해 인물 1위에 오른 점에서 문화 민족의 자긍심을 절로 느끼게 한다. 혜성처럼 등장해 일본 열도를 음악으로 점령해버린 모습이 마치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닮았다. 전함이나 비행기가 아닌 음악이라는 무기만 달랐을 뿐이다.

나윤수 컬럼니스트 nys8044@han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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