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마리안, 개선문

입력 2018.12.07. 15:56 수정 2018.12.07. 16:02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무등일보 주필

프랑스 대혁명기에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다(1830년). 그는 왼손엔 장총(長銃), 오른 손에는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를 들고 혁명을 독려하는 자유의 여신을 형상화했다. 자유·평등·박애는 프랑스 혁명이 추구했던 바이며, 이를 제도적으로 담아낼 공화정의 가치였다. 삼색기는 파랑·하양·노랑의 세가지 색깔로 그 정신과 가치를 오롯이 담아냈다.

총과 깃발을 든 자유의 여신은 당시의 시대적 가치를 부여받은 여성 ‘마리안(Marianne)’으로 혁명 대중의 뇌리에서 실질적인 이미지로 떠 올랐다. 들라크루아의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은 대중의 소망과 가치를 피워낼 마리안이라는 구체적 여성으로 변용됐다. 프랑스를 의인화한 가공의 인물인 셈이다.

마리안은 1848년 2월 혁명 때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1999년 9월부터는 프랑스 정부 공식문양으로 채택되고 흉상으로 만들어져 전국 3만6천여곳의 관공서 입구마다 세워져 있다.

마리안은 파리 나시옹 광장에 있는 ‘공화국의 승리’라는 동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프랑스의 화폐인 프랑화와 유로화 우표에도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의 또 다른 상징인 프랑스 수탉(프랑스 민족과 역사, 토지, 문화를 상징)과 대비된다.

그렇게 프랑스 공화국을 상징해오던 마리안의 흉상이 파괴됐다. 마리안 흉상은 파리의 대표적 문화재인 개선문 안에 조각돼 있었다. 개선문 외벽의 부조상에서 본뜬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담은 마리안 흉상의 훼손에 적잖은 프랑스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프랑스를 뒤 흔들고 있는 이른바 ‘노란조끼(Gilets Jaunes)’시위대의 폭력사태가 빚어낸 참상이다. 급격한 유류세 인상을 반대하던 공화국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선게 폭력 사태의 원인이다. 유류세 인상에 현 마크롱 정부의 친기업 정책들에 대한 비판까지 곁들여지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증폭됐다. 정권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도 나왔다.

흥분한 노란 조끼 시위대의 일부가 파괴한 건 마리안 흉상 뿐 아니다. 개선문 안 전시공간의 소형 개선문 모형이 부숴지고 나폴레옹의 두상은 목이 잘린 채 나뒹굴었다. 시위대는 개선문 내 전시공간의 기념 주화는 물론 그 안에 보관돼있던 현금까지 털어갔다. 개선문 외벽에 스프레이나 페인트 등으로 ‘우리가 깨어나고 있다’, ‘마크롱 퇴진’ 등의 낙서도 남겼다. 나폴레옹 1세가 세운 개선문은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 명소다.

서민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유류세 인상 등 반서민 정책을 주도한 친기업 성향의 마크롱 정부가 프랑스 혁명의 정신과 가치를 상징하는 조형물 파괴 등의 참사를 낳았다. 팍팍한 서민의 삶이 혁명정신과 충돌했다.김영태 주필kytmd86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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