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망년회, 송년회

입력 2018.11.21. 14:20 수정 2018.11.21. 17:40 댓글 0개
박석호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1본부장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우위썬(吳宇森) 감독과 작가 필립 K 딕의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 할리우드 액션영화 ‘페이첵’.

이 영화는 한 회사가 미래를 보는 기계를 발명한 천재 엔지니어(벤 애플렉)의 최근 2년 동안의 기억을 지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수 장비를 이용, 특정 기억이 담긴 세포를 하나 하나씩 파괴한다. 또 다른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도 아픈 기억만 골라 없애 주는 회사가 나온다. 이 회사 이름은 라쿠나(lacuna). 라쿤(lacune)은 의학 용어로 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 손상 부위를 말한다. 이런 부위가 많아질수록 기억력은 떨어진다.

한 해의 끝이 보인다.

몇일 뒤면 12월 마지막 달력만이 마지막 잎새처럼 벽에 달려 있을 것이다. 망년회와 송년회 시즌이 왔다.

‘망년회’(忘年會)는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다. 과거에는 일본어에서 차용된 ‘망년회’라는 말이 자주 사용됐지만 요즘에는 올해를 되돌아보며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으로‘송년회’가 자주 쓰인다. 송년회 때 어느덧 한 세월을 건너온 이들이 여기저기서 술잔을 부딪친다. 서로 술 한잔 권하며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하자고 외치고, 불쾌한 기억과 아픈 상처를 잊어버리자고 서로를 위로한다. 술 없는 송년회는 생각 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 이런 송년회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삶이 갈수록 팍팍해 지면서 서민들은 술 한잔할 여유 조차 없고, 기업들은 경기침체로 허리띠를 졸라매 송년회를 생략한다. 송년회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고깃집이나 식당에서 ‘부어라 마셔라’하는 ‘음주 송년회’ 일변도에서 호텔 외식, 스크린 골프, 와인바, 공연 관람 등 놀이모임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1차로 간단하게 끝내기로 하는 등 예년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연말이 되면 오랜만에 좋은 분들과 술 한잔할 수 있는 여유가 그립다.

그러나 폭음(暴飮)은 금물. 폭음은 불쾌했던 기억을 잊게 해 주기는 커녕 지난밤 기억의 필름을 끊어놓을 뿐이다. 적당한 음주로 안 좋은 감정의 얽힌 실타래를 술술 푸는 것이 술의 긍정적 역할이다. 과거에 쌓아놓은 얽힘을 푼다는 것은 화해와 소통으로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기분 좋은 일이다. 과거 스파르타인들은 연회가 열릴 때마다 술을 잔뜩 먹인 노예를 끌고 들어와 청소년들에게 구경을 시켰다고 알려져 있다. 스파르타인들은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첫잔은 갈증을 면하게 해 주고, 둘째 잔은 유쾌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셋째 잔은 발광을 시작하게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그로 부터 수천년이 지난 올해 당신의 송년회는 어떤 모습인가요?박석호 경제부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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