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고독한 파독 간호사·광부 죽음이라도 평안하게 ...”

입력 2018.11.16. 09:38 수정 2018.11.16. 10:54 댓글 1개
파독 간호사·광부 임종 돕는
호스피스 수퍼바이저 김인선씨
파독 간호사·광부 임종 돕는 호스피스 수퍼바이저 김인선씨

호스피스 수퍼바이저 김인선(67)씨는 베를린의 재가 호스피스 기관 ‘동반자’를 이끄는 독일사회 한인 호스피스의 대모로 불린다.

‘동반자’는 아시아 이주민들의 임종을 돕는 ‘동반자는 파독 간호사·광부들의 외롭고 힘든 임종을 지원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간호사 출신 호스피스 슈퍼바이저 김인선(67)씨의 열정과 눈물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독일 사회 유일한 이주민을 위한 호스피스 기관을 운영하는 김인선 수퍼바이저의 활동은 독일 사회에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베를린시가 선정한 베를린의 얼굴 204인에 선정됐고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이후 한국에서도 외교통상부 장관상, 삼성문화재단 ‘비추미 여성대상 특별상’, 한국방송(KBS) 해외동포상 등을 수상하며 독일 아시아이주민들의 오스피스 대모로 불리고 있다.

그녀에게 ‘동반자’에 관한 이야기와 재독 한인들의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된 이별, 호스피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호스피스는 이민자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외국에서 삶을 마감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쉬운 테마는 아니지요.

독일 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옛 세대라 고국의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단 돈 한 푼을 남겨두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한인 2세들은 사실상 독일인이나 마찬가지여서 문화가 전혀 달라 부모를 모신다는 규범 같은게 전혀 없죠. 많은 한인들이 가난과 문화적 차이, 언어소통 부재 등으로 외롭고 고독하게,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맑고 선한 눈가에 순간 눈물이 맺힌다.

언론재단 사회복지 마스터과정 연수과정에서 베를린에서 만난 김인선씨는 한국사회, 국가의 책임과 관심 등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칠순을 앞둔 호스피스 슈퍼바이저 김인선씨는 ‘동반자’에 관해 이야기를 하던 중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숨을 고른다.

간호사로 활동하며 훔볼트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사까지 마치며 한인 2세들을 위한 목사를 준비하던 중 한인 1세대들의 불행한 처지에 그녀는 삶의 행로를 바꿨다. 병원 근무 중 슈퍼바이져 강좌를 마친 것이 어쩌면 호스피스로 가기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인선씨는 지난 2009년부터 재가 요양 호스피스 기관 ‘동반자’의 수퍼바이저 겸 코치, 호스피스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반자’의 설립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파독 간호사· 광부 위해 사비 털어

1960년대 파견된 파독간호사와 광부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면서 한인들을 위한 복지관 건립 필요성이 높아졌다. 가난한 이민자사회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문제는 이들의 비극적인 노년, 그중에서도 외롭고 가난한 죽음이었다.

가난하던 시절 파견 나온 이들은 생활비만 제외하고 모든 돈을 고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거나 자녀들에게 쓰고 정작 자신들을 위해서는, 임종에 대비한 자금도 거의 없어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고 싶어도 늙고 병든 몸으로 한국음식이나 말에 대한 그리움, 언어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기관 입소는커녕 입원도 쉽지 않았다.

김인선 슈퍼바이저가 호스피스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이야기들을 묶어 한국에서 낸 책.

가장 가슴 아픈것은 치매였다.

“치매에 걸리면 독일어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한국어만 기억해 독일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병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문화적 차이에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가는 그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설명이다.

하나 둘 이승을 하직하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한 호스피스 기관을 만들어야했다. 베를린 시와 독일기업은 물론이고 한국기업 등을 찾아 나섰으나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독일사회는 그렇다치고 한국기업에서 ‘외국인’ 취급할 때는 눈물이 났다.

“왜 독일한인들을 한국기업이 지원하느냐”는 반문엔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2005년 생명보험 해약한 돈을 종잣돈으로 사비를 털고 친구와 어머니의 도움으로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편안한 임종을 돕기 위해 호스피스 기관 ‘동행’을 만들었다.

복지국가서 외롭게 죽어가는 한인들

‘동행’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해 설립했지만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의 필리핀, 베트남 등 이웃 동아시아 출신 이주민들의 임종도 함께 지원에 나섰다. 그래서 이름도 ‘이종문화 호스피스 동행’이었다.

얼마 못가 재정난에 부딪혔다.

독일 호스피스 기관은 운영비를 독일 건강보험이 모두 지원한다. 다만 연 단위로 후불재인데다 사무실과 병상 등 필요한 시설 등은 해당 기관이 구비해야한다.

독일 호스피스 기관들은 대부분 기업이나 개인들의 후원으로 운영이 되는데 한국인 등 아시아인을 위한 호스피스 ‘동행’에는 개관 이후에도 기부할 기업도 개인도 거의 없었다.

개인들은 가난하고 아시아 기업들은 후원에 관심조차 없고, 독일 기업들은 이주민 호스피스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찌 어찌 버티다 2009년에 막다른 길에 내몰렸다.

베를린 시 지원으로 한인 임종지원

당시 서비스를 받던 이들을 비롯한 한국인들과 한국기관, 아시아 관련단체에 절절한 편지를 보냈다. 답이 오는 곳이 없었다. 한국정부에도 호소했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그렇게 ‘동행’은 문을 닫아야했다.

그녀의 맑고 선한 눈망울에 눈물이 맺히던 즈음이다.

‘동행’의 소식이 베를린 사회에 울림을 줬는지 베를린시가 지원에 나섰다. 문을 닫은 후 백방으로 알아보던 중 독일 인도주의 협회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그 해 ‘동반자’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독일 호스피스 체계는 아주 잘돼 있다.

이곳에서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도 130시간의 교육을 마쳐야 활동할 수 있다. 누군가의 죽음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인식과 자세 등이 뒤따라야하기 때문이다. 또 죽음과 저마다의 가슴 아픈 사연을 함께하다보면 자원봉사자들에게 우울증 등 다양한 병리현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 자신을 보살피는 슈펴비전을 반드시 받아야한다.

자원봉사자 교육·자기점검 교육

이 부분이 독일 호스피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슈퍼비전이란 자원봉사자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부닥치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살펴서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형태인데 치료나 상담이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알아차리도록 돕는것’이라고한다.

임종을 돕는 사람들이 입게될 트라우마 스트레스,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우울증 등 병리적 문제들을 본인이 살필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하는 사람이 ‘슈퍼바이저’다. 독일은 목사나, 변호사, 간호사 등 다양한 직역에 슈퍼바이저를 두고 있다.

김 슈퍼바이저는 “한국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호스피스 활동이란 것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들고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역할인데 너무 가볍게 운영되는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고 하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면서 살겠다”고 말한다,

“ 때로 섭섭하고 아쉽기도 하지마 세상이란게 그런 것 아니냐”면서도 마지막까지 아낀 말은 한국사회, 정부에 대한 바람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은 한국에 휴가라도 가고 싶어하고 고국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한다”며 “이들을 위한 작은 쉼터라도 마련해서 이들이 그리운 고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국가가 작은 관심이라도 기울여 주면 좋겠다”.

베를린시에서 자원봉사에게 주는 감사장을 받은 각나라 대표들과 함께 한 김인선 슈퍼바이저(왼쪽에서 세번째)

독일 유일한 이주민 임종지원 기관

고국어로 말동무, 심리치료 완화연결

임종관련 서류 지원, 임종함께하기도

베를린시에서 자원봉사자에게 주는 감사장을 받는은 각나라 대표들과 함께 한 김인선 수퍼바이저(왼쪽에서 세번째)

호스피스 ‘동반자’는

파독 간호사·광부 등 한인과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이민자를 위한 호스피스 기관으로 김인선 슈퍼바이저가 2009년 독일 인도주의 협회 지원으로 창립했다.

이곳은 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 봉사활동, 사회통합 활동 등을 한다.

자원봉사자 교육은 올해로 21기까지 마쳤고 봉사자들은 한인을 비롯해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인들로 구성돼 이들에 대한 문화와 언어 지원을 한다. 15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고 연 50-80명 정도의 환자들에 대한 봉사활동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자국어로 말동무가 돼주고 집에서 편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의사연결이나 서류작업 등도 돕는다. 죽음이 임박했을 경우 자원봉사자가 집에서 함께 자면서 주치의를 불러 환자의 임종을 함께하기 때문에 외롭지 않게 세상을 떠날 수 있다.

봉사활동은 차량지원부터 직업안내, 간호관기관이나 의사 연결 등 다양하다.

또 음악 치료나 기타 문학 습작교실 등 다양한 문화활동도 지원하고 자체 세미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 일반 자원봉사자 교육 등도 진행한다.

다른 외국인 단체와의 연대활동이나 교류, 동아시아 인들과의 만남의 장도 연다. 단순한 호스피스를 넘어 이종문화간 교류의 장인 셈이다.

글 ·사진 베를린=조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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