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민원과 공익가치의 충돌

입력 2018.11.07. 14:23 수정 2018.11.07. 14:40 댓글 0개
윤승한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지역사회부장

꼭 순기능만 있을 순 없다. 순기능이 있으면 역기능도 있게 마련이다. 세상 일이 그렇다. 순기능과 역기능 간 ‘경(輕)-중(重)’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보면 그 차이를 굳이 ‘경(輕)-중(重)’으로 가르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처한 입장이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데, 똑같은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경(輕)-중(重)’을 따져야 할 때가 있다. 선택의 순간이 그렇다.

요즘 장성군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로수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그랬듯 장성에서도 가로수가 보존과 제거 사이의 선택의 문제가 되고 있다. 따질 필요없이 그냥 제거하거나 아니면 존치 결정을 내릴 수만 있으면 더할나위 없다. 헌데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존치시키자니 주민들의 불만이 너무 크고 제거하자니 공익적 가치의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순기능과 역기능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장성군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논란의 근원지가 바로 장성읍 성산마을이다. 이 마을은 특히 은행나무 가로수길로 잘 알려져 있다. 도로변 양쪽 500여m에 이르는 구간에 수령 50년이 넘은 은행나무 130여주가 심어져 있는데, 매년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이 장관이다. 이곳에 은행나무가 심어진 것은 지난 1960년대다.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 바람이 거세던 시절이다. 바로 그시절, 잎과 열매 효능 때문에 은행나무가 농촌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주목받으면서 주민들이 앞다퉈 심었던 게 오늘에 이르렀다.

그 때 은행나무들이 심어졌던 이 마을 도로변이 5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가을 명품길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나주 남평 은행나무길과 함께 전남의 대표적인 가을 은행나무길 명소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가을단풍에 붉은물이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면 이곳은 여지없이 가을낭만을 즐기려는 지역민들과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바로 이 은행나무들이 ‘존치-제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새마을운동땐 주민들의 소득원이었고 그 이후엔 명품 은행나무길로 사랑받아온 50년 넘은 나무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인근 주민들의 입장은 분명하다. ‘제거하자’는 쪽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나무들로 인해 상가 건물과 담장에 금이 가고 보도블럭이 훼손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상가 간판을 가려 불편하다는 의견도 제거해야 한다는 쪽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순기능도 있겠지만 역기능이 큰 만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 입장에선 어쩌면 당연한 주장이다.

사실 가로수는 공익적 가치가 큰 공공의 자산이다. 공기 정화니, 소음 완화니, 통행의 쾌적성이니, 교통 안전성이니 등 굳이 그 순기능을 나열하지 않아도 가로수가 갖는 공공의 의미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특히 성산마을 은행나무는 단순히 가로수의 의미를 넘어 이 마을의 정체성이 된 지 오래다. 장성군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주민들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기에는 공익적 가치가 너무 크다. 선택하라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지만 선뜻 선택할 수 없는 장성군의 입장이 참 딱하다.

현재 장성군은 다양한 안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달 진행한 설문조사도 그 중 하나다. 나무 제거 여부, 찬성과 반대 이유 등을 물었는데, 주민 등 870여명이 참여했다. 이 결과는 최종 선택을 위한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예정이다. 다른 곳으로 나무를 옮겨 심는 방안, 현재 자리에서 존치하는 대신 문화의 거리 등으로 조성하는 방안 등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어내는 안은 빠져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어느 쪽이든 선택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선택은 늘 그렇듯 어렵고 힘든 문제다. 어느 쪽의 결론이든 후유증은 불가피하다. 특히 성산마을 은행나무처럼 민원과 공익적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필요한 게 사회적 합의다. 그리고 그 합의의 전제 조건은 ‘양보와 그 양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 설득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다.

한번 훼손된 경관은 다시 복구하기 어렵다. 성산마을 은행나무길의 역사가 50년이 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적 합의의 명분은 이미 충분해 보인다.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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