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일단정지' 보고도 그대로 돌진···"못 봤다" 변명만

입력 2018.11.02. 18:34 수정 2018.11.03. 08:00 댓글 1개
[무등 Magazine] 음주운전 단속 현장 백태

처벌 강화 앞두고도 현장에선 음주운전 적발 여전
추격시 3차 사고 우려… 부담은 고스란히 경찰에게
그만 할때까지 부세요
‘음주운전 처벌기준 강화’가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 도심의 대로에서 경찰서 관계자들이 야간 음주운전 단속을 하고 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연말연시를 맞아 사고예방 및 인식제고를 위해 이달부터 내년 1월까지 광주시내는 물론 외곽지역까지 주·야간불시 음주운전 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오세옥기자 dk5325@hanmail.net

# 교통경찰관 A(36) 경장은 최근 진행한 야간 음주단속을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 땀이 흐른다. 음주차량이 단속을 알리는 도로통제 표지판(라바콘)을 밀고 경찰의 제지에도 불응하고 수십m를 돌진했다. 도주 차량으로 생각하고 긴장하던 찰나, 차를 세운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더니 “정말 못 봤다”라며 첫마디를 꺼냈다. 라바콘 대신 의경이나 경찰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0% 면허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

# 지난달 29일 음주운전으로 차량 3대를 들이받은 B(34)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B씨는 광주 북구 양산동 한 도로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기 위해 도주하다가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두 대를 잇달아 충격, 추가로 버스까지 들이받고 나서야 멈췄다. 사고 당시 B씨는 술 냄새를 심하게 풍기고 있었다.

경찰이 음주운전 근절대책으로 단속기준과 법정형을 강화키로 한 가운데 연말연시 특별단속에 돌입했다. 시민 대부분이 강화 정책 추진을 적극 반기고 있지만 단속 경찰관이 체감하는 음주운전 행태는 여전하다. ‘도로 위의 살인’ 음주운전의 위험성과 행태를 실제 단속에 나서는 교통경찰관의 입장에서 살펴본다.

◆음주운전 단속, 어떻게 이뤄지나?

음주단속 장소는 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한다.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 곳을 중심으로 단속이 이뤄진다. 단속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장소를 자주 옮겨야 한다. 음주단속 장소라는 소문이 퍼지면 음주운전 차량이 우회하기 때문이다.

경찰서마다 차이는 있지만 단속은 3시간 정도 진행된다. 평일은 주말(금·토요일)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오후 9시께 시작해 유동 차량이 줄어드는 자정까지 진행될 때가 많다.

금·토요일에는 오후 10시께 시작하며 단속 시간도 3시간을 넘길 때가 많다.

단속 사각지대인 오전 3∼4시를 악용하는 얌체 운전자에 대한 단속도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먼저 새벽에는 단속경찰관 안전 확보가 어렵다. 일제단속이 아닌 경우에는 2~4명 정도의 경찰관이 투입되고 있다. 새벽에는 차량 속도가 빠르고 안개 발생으로 가시거리가 짧아 사고 위험이 높다.

◆인사불성 만취운전에 경찰도‘아찔’

보통 단속에 나서면 훈방은 5건 내외, 면허정지 이상 적발도 비슷하게 발생한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2배 정도 적발된다.

A 경장은 “음주운전 단속 강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최근에 현장 적발이 다소 줄어든 것 같다”면서도 “교통사고조사계 데이터를 보면 현장 적발 외 전반적인 음주교통사고 추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음주단속에 나서는 경찰이나 의경은 수 차례 위험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A 경장은 “단속 지점 이전부터 차량을 통제하는데 인력으로 할 때도 있고 도로통제 표지판만으로 할 때도 있다. 최근 야간 음주단속 중 표지판을 밀며 운행하는 차량이 있었는데 고의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만취 상태의 운전자였는데 라바콘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음주운전은 이만큼 위험한 행동이다”고 설명했다.

음주운전 차량으로 인해 단속 인력이 크게 다치기도 한다.

올 들어서도 주요 단속 구간인 광주 광산구 무진로 합류구간 음주단속 중 음주운전 차량이 의경을 들이받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 음주운전자는 의경이 전방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도주하기 위해 고의로 속도를 냈다. 크게 다친 의경은 현재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도주해도 수치·사고 미발생 시 처벌 못해

단속에 불응하는 차량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음주단속을 발견하고 불법 유턴 후 돌아가는 차량에서부터 통제지점 앞까지 와서 무시하고 속도를 내는 차량에 이르기까지 아찔한 상황이 빈번히 발생한다.

도주 시 경찰은 몸으로 막거나 라바콘을 차량 밑으로 들이민다. 플라스틱 재질의 라바콘을 밑에 끼고 운행하면 큰 소음이 발생, 추격에 도움이 된다.

추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공조요청을 하는데 상황실을 거쳐 인근 지·파출소로 전달된다.

추격을 시작하더라도 경찰의 부담은 여전하다. 추격 중 3자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고스란히 떠맡기 때문이다.

도주 차량을 붙잡더라도 사고를 내지 않고 단속 수치에 미달되면 교통범칙금 6만 원에 벌점 15점 부과가 고작이다.단, 도주 중 경찰을 다치게 하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혐의를 적용, 교통사고가 아닌 형사사건으로 간주되며 운전자 보험처리도 불가능하다.

경찰의 정당한 제지를 따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처벌대상이 되는 미국·일본과 달리 국내에는 도주죄가 없다. 솜망방이 처벌에 경찰이 허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유대용기자 ydy21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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