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지식인의 부끄러움

입력 2018.11.01. 18:12 수정 2018.11.01. 18:16 댓글 0개

“새 짐승도 슬피 울고 산악 해수 다 찡기는 듯/무궁화 삼천리가 이미 영락되다니/ 가을 밤 등불 아래 책을 덮고서 옛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승에서 지식인 노릇하기 정히 어렵구나.”

구한말 지식인 광양 출신 매천 황현 선생이 남긴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그는 나라가 망하자 지식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못 이겨 자결한다. 벼슬 한 자락도 못한 매천이 지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움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그만큼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가 크고 무거움을 일깨운다. 부끄러움을 아는 시대의 지성에게 국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을 수여해 예우해 왔다. 참지식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식인을 사전에서 보면 ‘일정한 지식을 지니면서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사람 정도’로 정의된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공 지능이 발달하면서 지식이라는 것도 별개 아니게 됐다. 지식이 너무 빨리 변하는 데다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식 자체가 개인 소유물이 되기도 힘들어 졌다. 그래서 지식인하면 지식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역할이나 책무가 강조 된다.

그럼에도 가당치 않은 인물들이 스스로를 지식인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터넷 몇 자 뒤지면 왠만한 지식은 다 검색 할 수 있는 세상인 데도 “지식인”인 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아마추어도 다 알수 있는 지식을 자기 만 아는 것처럼 위장 하기도 한다. 필자 같이 언론에 수십년 몸담은 사람도 지식인은 커녕 유트뷰,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활약하는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만도 못하다. 그러니 당연히 지식인 노릇 해본 적 없다.

이런 세상에서 자신들을 지식인이라고 떳떳이 내세우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대단한 용기다. 호기롭게 무슨 무슨 ‘지식인 선언’같은 것에 용감하게 떡하니 ‘지식인’ 딱지를 붙인 것이다. 며칠전 ‘문퇴진 지식인 선언’이라는 다소 생뚱 맞게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현직 국회의원 나으리들께서 참여한 ‘문재인 퇴진과 국가 수호를 위한 320인 지식인 선언’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의 국가적 충정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오죽 걱정(?)됐으면 그냥 지식인들이 나서서 대통령 퇴진 선언까지 했겠는가.

나라 걱정하는 충정이야 이해 하지만 ‘지식인’이라고 인정 하기에는 무리다. 그들의 면면을 다 밝히지도 않으니 알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다.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진하라고 지식인 아니라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무슨 사회적 책무를 다한 ‘320인의 지식인’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문재인을 싫어 하는 320인 모임’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지식인 선언’ 하면 왠지 폼은 나는 듯 하다. 매천 선생의 부끄러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나윤수 컬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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