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아, 으악새 슬피우니"

입력 2018.10.31. 17:39 수정 2018.10.31. 17:42 댓글 0개

“아∼ 으악새 슬피우니”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여울에 아롱젖은 이즈러진 조각달/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고복수의 대표곡 중 하나인 ‘짝사랑’의 1절 가사다. 박영호가 노랫말을 만들고 손목인이 곡을 붙였다. 이 노래가 나온 것은 일제시대인 1936년이다. 가슴을 파고 드는 서정적인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가 눈물겹다. 찬바람이 돌기 시작하는 이 맘 때 거나한 술한잔 뒤끝 어김없이 자연스레 흥얼거려지는 노래니, 국민가요라 할만 하다.

으악새 슬피우니 어느덧 가을이고 보면, 일제시대하에서 그 허허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지나간 시간은 아쉬울 뿐이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즈러진 조각달의 신세가 더없이 처량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싶다. 그렇게 고복수의 ‘짝사랑’은 일제시대와 6·25한국전쟁을 거쳐 오늘에 이르끼까지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고리가 됐다. 여전히 이 노래 속에는 막걸리 몇 순배에 얼굴 불그잡잡해진 할아버지가 있고 아버지가 있다.

이 노랫말 중 특히 가을정취가 물씬 배어 있는 부분이 ‘으악새’다. 으악새가 슬피 울지 않았으면 가을인지 몰랐었을 수도 있었겠다. 가을이 가을임을 알려주는 단초가 으악새인 것이다. 고복수의 ‘짝사랑’ 세대들에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으악새가 곧 가을인 셈이다. 이 노래가 1936년에 나왔으니, 올해로 82년이 됐다. 참 , 긴 세월 슬피울어댄 팔순의 으악새 덕에 가을은 제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고복수 ‘짝사랑’의 으악새가 무엇인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으악새를 ‘억새’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왜가리’라고 한다. 각각의 주장들이 설득력 있다.

우선 ‘억새’라고 주장하는 쪽은 으악새가 억새의 방언이라는데서 근거를 찾는다. 실제 1990년 이전에 나온 모든 국어사전에는 ‘으악새’가 ‘억새의 사투리’로 돼 있다. 억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바탕으로 ‘으악새 슬피우니’라는 대목을 ‘억새풀이 바람에 서로 부벼져서 우수수 소리가 나니’로 해석한다.

반면 으악새를 ‘왜가리’라고 주장하는 쪽은 평안도 방언인 ‘왁새’에 주목한다. ‘왁새’는 왜가리의 사투리다. 공교롭게도 이 노래의 작사가인 박영호는 함경도 원산에서 주로 활동했던 월북작가다. 때문에 ‘왁새’를 으악새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 주장의 배경 중 하나다. 으악새가 왜가리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으악새가 식물인 억새라면 어떻게 슬피울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동물인 새였기에 울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다. 그렇다 치자. 헌데 으악새가 무엇인지 뭐가 그리 중요할까. 으악새가 억새였어도 매년 가을이면 슬피 울었을 것이고, 으악새가 왜가리였더라도 매년 이 맘 때면 슬피 울었을 것을. 그렇게 고복수 ‘짝사랑’의 으악새는 82년을 슬피 울었다. 덕분에 올해도 가을이 온 걸 알았다.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ysh68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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