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공론화로 길을 묻는 사회

입력 2018.10.26. 11:12 수정 2018.10.26. 19:44 댓글 0개
김기태 아침시평 호남대 언론학과 교수 / 한국지역언론학회장

“그 골치아픈 일을 어쩌자고 맡았어.”, “정말 이번에는 결론을 낼 수 있는거야?” 광주도시철도2호선 공론화위원회 출범 관련 사진이나 영상보도에서 필자 얼굴을 확인하고 주변 지인들이 전해 온 대부분 반응들이다. 힘들겠지만 뜻깊은 일이니 잘 해보라는 격려성 주문도 없진 않았으나 그런 의견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도시철도2호선 건설을 둘러싼 찬반 공방은 우리 지역에선 이미 의제 피로감이 극도에 이른 사안이다. 길게는 16년을 끌어온 안건이고 여러번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등장해서 논란을 거듭해 온 논제였기 때문에 많은 광주시민들은 결과와 관계없이 이젠 결말을 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문제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달 17일 공론화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이후 매주 회의가 열리고 있고, 찬반 양측으로 구성된 소통협의회를 통해 양측의 갈등과 이견을 조정해오고 있다. 극도의 인내와 이해가 필요한 순간들의 연속이지만 만남과 대화가 거듭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서로를 대화 상대로 여기기 보다는 넘어야 할 산으로만 생각해 온 까닭에 차분한 의견 교환이나 진정한 소통이 어려운 상태였다면 지금은 조금씩 이견을 조정해가는 진전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찬반 자체에 대한 타협이 아니라 공론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명분에 대한 동의 때문이다.

이번에 선택한 숙의형 공론조사는 단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한 의사 결정과정의 피상성과 단순성을 보완하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교육, 훈련, 토론 등 심층적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하는 방식이다. 공론(公論)이란 특정 사안에 대해 여럿이 함께 논의하고 숙고하여 그 사회의 공적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된 공공의 의견을 지칭한다는 점에서 사회구성원의 의사를 단순히 모아놓은 중론(衆論)과도 다르고, 중론의 평균치를 낸 여론(與論)과도 상이하다.

지난해 이루어졌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비롯해서 올 해 들어 대입제도개편, 부산 간선급행버스, 제주 영리병원, 대전 월평공원 공론화 등이 현재까지 진행했거나 진행되고 있는 공론화 사례들이다. 가히 공론화 전성시대인 셈이다. 이 중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는 의제가 양자택일(건설 중단 또는 재개)의 문제였고, 기회 비용이 발생하는 등 광주도시철도2호선 공론화 의제와 매우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이를 준용하기로 했다.

공론화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충실한 자료 제공과 풍부한 논의 과정을 거쳐 시민들 스스로 사안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한 후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주체적으로 결정하도록 유도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과정에서 공론화위원회는 엄정 중립을 지키면서 찬반 양측의 질서있는 의견 표명 기회를 제공하고 서로 합의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충분한 숙의가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광주도시철도2호선 공론화 과정과 결과 도출 경험은 앞으로 우리 지역의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정책 결정의 가능성과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과 자료 그리고 진행 과정을 담은 백서 발간 등을 통해 귀중한 사례로 남기게 된다. 그런 만큼 본래 공론화를 통한 문제 해결 방식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최종 결정에 이르기 까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공론화위원회는 물론이고 찬반 양측 그리고 광주시민 모두에게 주어진 중요한 책무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3일 광주시민 2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여론조사가 순조롭게 끝났고, 이 중 250명의 시민참여단을 선정해 자체 학습과 1박 2일 합숙기간 동안 발제, 토론 등 다양한 방식의 숙의 프로그램을 거쳐 11월 10일 최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공론화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이를 주관하는 공공기관의 엄정 중립이다. 일단 공론화를 결정한 이상 해당 기관은 선수에서 심판자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관련 논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 정보와 자료를 사실에 근거하여 적극적으로 제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 만능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정당한 행정행위를 미루거나 피하려는 편법으로 남용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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