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반성의 품격, 미래는 어디에서 오는가

입력 2018.10.24. 11:48 수정 2018.10.24. 12:53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괜히 마음이 아프다.

비틀거리며 베를린 밤거리 버스킹에 몸을 실은, 알콜에 절은, 일그러진 몰골의 중년의 여인. 틀에 박힌 제도, 국가마저도 거부하며 전 생애를, 전 역사를 유랑해온 낭만과 자유는 흔적도 없이 뒷골목 후미진 풍경으로 남았는가.

‘조심하세요, 가방 조심하세요’ 일정 아 바뀔때마다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집시를 조심 하세요’. 어떤 사람들이 집시인지 설명도 없지만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알고’ 있다. 설명이 이어진다. ‘그들은 집단으로 조직적으로 소매치기를 한다. 교육도 거부하고 정착도 하지 않고 저렇게 살고 있다. 유럽의 골칫거리다’

피해자에도 등급이 있는가

그녀의 눈길 하나, 마음 한 자락을 위해서라면 전 생을 걸고 싶은 매력적인 인간, 카르멘으로 상징되는 낭만과 자유는 그림자도 없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었다면 달랐을까, 헝크러진 중년의 집시여인이 인간의 초라한 얼굴을 들춰낸다, ‘너도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던 한때 유명했던 저잣거리의 해묵은 이야기, 그 너머로 미국 인디언들이 스친다. 교육을 받아 미국인들처럼 살아가는 이들은 행복할까, 미국이 정해준 ‘(인디언)구역’에 사는 이들은.

정착 생활하는 인간이라는 종에서 유랑하는 집시는 이채로운 집단이다. 언제나 주변인이다. 인간 내면에 대한 심리학적 보고서로 불리는 소설들을 써온 도스토옙스키조차 집시는 주변 장치로 등장시킬 뿐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트리가 팜므파탈 그루센카를 찾아간 곳에서 그들의 만남에 흥을 돋워주는 부대일 뿐이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도스토옙스키라도 집시를 다뤘더라면, 집시에 대한 문화사적 역사적 보고서가 됐을 텐데, 그랬으면 집시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적인 바람에서다.

집시여인이 가라앉힌 검은 생각들 사이로 반갑다고 해야할지 씁쓸하다고 해야할지 둥근 소식이 더해진다.

베를린 시내 한 가운데 나찌 시절 학살당한 집시들을 기리는 공간이 들어섰다. ‘나치에 학살당한 집시를 위한 기억공간’(MEMORIAL TO THE SINTI AND ROME OF EUORPE MURERDER UNDER NATIONAL SICIALISM)은 베를린 국회의사당 근처 공원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에 마련돼 있다. 집시는 유대인 동성애와 함께 히틀러 홀로코스트 리스트에 오른 참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50-100만이 학살당했다고 전해지지만 구체적 자료는 없다고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이들의 얼굴이다. 2차 대전 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현대사회 혹은 독일사회의 대응에 비춰볼 때 늦어도 너무 늦었고 초라해도 너무 초라하다.

수도 한복판에 울리는 다짐

베를린은 하나의 거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다짐의 공간이다.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수도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과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옆, 독일 심장부 한 복판에 유대인을 기리는 공간이 자리해 있다. 비석을 연상케하는, 2711개의 크기가 다른 콘크리트 조형물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 인근에는 ‘테러의 지형학(Topography of Terror)’이 2010년 문을 열었다. 2차 대전기간 나찌가 저지른 만행을 알리는 이 사료전시관은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사족을 더하자면 아시아 광주라는 도시에서 온 방문객에게 나찌 만행은 끔찍하게 친숙하다. 시체를 실어나르는 트럭 등 어디선가 본 듯하다. 이 잔인한 랑데뷰. ) 그뿐인가,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는 유대인 박물관, 학살된 유대인이 살았던 공간을 알리는 길거리 표지들.

잘못된 과거를 결코 잊지 않겠다는 독일인의 다짐, 나는 나의 지난 여름을 잊지 않는다는 선언은 묵직한 품격으로 다가온다.

다만, 2018년 오늘, 독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유럽 최고의 난민 수용국, 극우 반이민 정당이 제3당인 나라. ‘반난민’ 폭력시위, 이에 반대하는 몇 배 규모의 시위. 난민의 사회정착 지원, 임금차별 등 유무형의 이민자 차별로 인한 갈등.

“독일 사회에서 극우의 세력화가 있어왔지만 이를 이겨내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훨씬 더 큽니다.” 이윤정 베를린 자유대학 한국학 연구소장(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위안부문제를 비롯한 전쟁 범죄를 전면 부정하는 일본은?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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