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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 경영이야기⑥]선택과 집중, 한국만의 강력한 무기는 '그룹경영'

입력 2018.10.20. 06:03 댓글 0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단지 기흥캠퍼스

【서울=뉴시스】 현명관의 '경영 이야기' ⑥

경영자원에는 한계가 있고 또 프로젝트 참여 등 의사결정에는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후발주자, 경쟁력 약자는 상대적으로 자기가 강점이 있는 분야 또는 상대방의 약점부분을 선택하여 거기에 모든 자원을 집중해야 합니다. 강자와의 전면전은 백전백패입니다.

글로벌 경쟁을 세계시장에서의 기업간 전쟁이라고 한다면, 일반전쟁 이론과 마찬가지로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술적 측면을 고려하여야 합니다. 최소한 상대방의 약한 고리, 상대적으로 경계심을 놓고 방심하고 있는 곳을찾아 그곳을 공격지점으로 선정한 다음, 나만의 무기 또는 내가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한 무기체계를 총동원하여 집중 공격 또는 방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때 세계시장은 미국의 마이크론과 일본의 도시바·히다치·샤프 등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여 수요자, 즉 바이어 주도 시장이었습니다. 1라인 건설에 1조원 이상 투자되는 자본집약적인 데다가 제품의 수명이 매우 짧은 대표적 기술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기술과 전문인력 등 아무런 기반이 없는 한국의 삼성이 새로이 여기에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병철 회장은 전격적으로 예상과 상식을 깨고 1983년 2월7일 아침 6시30분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505호실에서 당시 홍진기 회장에게 전화를 해서 "삼성이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에 진출한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식 발표케 했습니다.(홍하상, 이병철경영대전)

그 후 업계 예상대로 삼성그룹 전체가 2번에 걸쳐 부도에 직면하는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삼성이 온힘을 다하여 업계의 예상보다 빨리 64k드램 개발에 성공하여 수출을 시작하자 기존업체들이 경계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삼성 죽이기에 돌입했습니다. 마이크론이 지금까지 3달러 하던 64k드램을 절반수준인 1.8달러로 덤핑했고, 뒤이어 일본 도시바 등도 0.3달러로 종전가격의 10의 1이라는 대폭적인 덤핑을 치고 나왔습니다. 삼성은 원가 이하인데도 울며겨자먹기로 0.2달러로 출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몇 개월 사이에 무려 1300억원의 손해를 봐야 했고, 2번째 라인을 건설하여 256k드램을 생산하면서 3년연속 수천억원 적자를 봤습니다.(홍하상, 이병철경영대전)

이런 위기에서 삼성은 삼성전자 1개 회사 차원이 아닌, 전 그룹 차원의 반도체 총력지원 태세로 돌입했습니다. 삼성생명, 삼성통신, 제일제당, 제일모직 등 모든 회사의 자금을 총동원했습니다. 자기자금뿐 아니라 그룹 각사가 은행대출 가능한도만큼 전부 융자받아 반도체에 전액 투입했습니다. 그룹이 아니었다면 반도체 사업은 불가능했습니다.

만약 지금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이런 무모한(현재 시각에서 본다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자금뿐 아니라 은행대출금 등 타인자금까지 차입하면서 법인격이 다른 삼성전자에 자금대여를 할 수 있나요. 만약 하였다면 집단소송을 당하거나 배임 등 형사문제까지 되지 않았을까요. 그룹이라는, 다른 나라 기업이 가지지 않은 삼성만의 강력한무기를 가지고 위기를 모면하였던 것입니다.

현대의 자동차, 조선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그룹이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포스코의 철강은 한국정부가 지급보증해서 자금조달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항제철은 국가가 만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과거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그룹경영체제라는, 다른나라 기업에는 없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이미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득권자인 거대 다국적기업 등과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분명한 것은 시장지배자인 다국적기업과 똑같은 방법, 똑같은 무기를 가지고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지금까지 기득권자가 해온 논리와 방법입니다. 즉, 강자의 논리입니다. 따라서 글로벌 스탠더드로만 한다면 후발, 새로운 세계시장 참여자, 즉 팔로워는 영원히 기득권자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경쟁력의 필요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α'가 있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만의 한국적 경영모델을 하루빨리 모색할 필요성이 대두됩니다.

그룹제도라고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중국 장쩌민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 다음 귀국 후 첫번째로 지시한 것이 "한국의 그룹제도를 연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주요 국영기업이 '~집단'이라고 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4차산업혁명의 특징은 복합화, 융합화입니다. 여러 기술(예컨대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융합, 전자기술과 인공지능 기계공학의 융합 등), 여러 산업(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의 융합없이는 경쟁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수출 선적장

이런 추세에 비추어 보면 이미 여러 기술, 여러 산업을 포용하고 있는 그룹체제의 활용이야말로 우리만이 가지는 새로운 경쟁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미래산업과 미래 핵심기술 동향에 기동성 있게 적응하기 위하여 현재의 그룹조직과 문화는 새롭게 탈바꿈해야 되겠습니다만, 이미 우리만이 갖고 있고 또 글로벌 경제전쟁터에서 강력한 무기임이 입증된 무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새 그룹 오너와 그 가족들의 행태에 대한 비난이 많습니다. 물론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상식을 벗어난 갑질, 위법적인 증여와 탈세 등은 당연히 엄단해야 되고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그룹, 기업과 그 오너는 구분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한 사람은 엄단해야 하지만 기업과 그룹까지 일괄 비난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아 경영에 지장을 초래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은 우리가 공들여 키워온 귀중한 재산입니다. 오너나 그 가족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자산입니다. 아껴야 되고 격려해야 됩니다. 그래야 의욕과 자신감을 갖고 전쟁터에 나가서 열심히 싸웁니다. 기업은 경제전사입니다. 기업이 있어 일자리가 생기고, 세금을 내게 하고, 협력업체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귀중한 사회적 자산입니다.

업의 개념과 특성은 획일적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관점에 따라 또는 보는 계층에 따라 중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업의 개념과 특성은 일반적으로는 서비스업, 그 중에서도 인적 서비스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서비스 차별화와 서비스 경쟁력을 고민해야 하는 중견관리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서비스업'에서 한걸음 나아가 '손님을 알아주는 서비스업'으로 그 개념을 확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일반 호텔과는 다른 사전 서비스(손님을 미리 알아보고 손님이 말하기 전에 하는 차량 호출서비스 등)를 시도하는 등 차별화 노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임원, CEO 등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초기에 많은 자본이 투자되고 그 회수는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장치산업적 특성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호텔을 새롭게 짓는 경우에는 호텔이 들어서면 주민 편익시설과 집객효과 등으로 주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기대가 있으므로 부동산개발업적 특성을 더 감안하여 부지선정과 부지규모 등을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호텔은 통상 오픈해서 5년 내지 7년 정도는 적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업을 하는 것은 브랜드 지명도 제고와 이미지 고양 이외에 부동산 가치가 높아져 영업 자체만으로는 적자일지라도 부동산 가치상승이 이를 커버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희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서울 강남과 강북을 잇는 지점에 위치해 있는 어느 호텔 인수를 검토하고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검토해 본 결과 부지를 둘러싸고 몇년간에 걸친 법적분쟁이 있고, 이미지와 지향하는 영업정책이 신라호텔과 상반되어 플러스 시너지효과보다는 오히려 마이너스 시너지효과가 더 클 것이므로 인수하지 않는게 좋다는 결론을 내고 당시 비서실장을 통하여 보고하였습니다. 이후 지금 제주신라호텔 부지를 매입하게 됩니다.

이건희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고 얼마 안 있어 비서실 팀장회의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이 문제가 거론됐고 "현(명관) 전무가 호텔업의 개념을 잘 모르는 것 같다"라고 하였다는 것이고, 그 뒤로도 사장단 회의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땅 대신 앞서 그 서울의 호텔을 샀더라면 부가가치가 얼마나 더 상승했겠느냐고 힐책하곤 했습니다.

삼성그룹 처음으로 백화점업에 진출하는 테스트 케이스가 바로 분당백화점이었습니다. 어떻게 '삼성답게' 만들까, 신세계백화점 등 기존점포와 견주어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작품을 만들어낼까 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우리 백화점을 이용할 고객층의 특징과 니즈는 무엇일까, 기존의 백화점들이 등한시하고 놓치고있는 것은 무엇일까, 백화점을 이용하는 주고객층의 소비 행태와 패턴은 어떤가,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만의 쇼핑문화 특징은 무엇일까···.

결론은 백화점 등 유통업의 특성은 집객업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을 정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주고객층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어떤 코너일까, 거기를 선택하여 다른 백화점과는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도록 집중 연구, 조사하여 투자하자. 상권 조사결과 중류 이상의 30, 40대 주부들과 50대 후반에서 60대 후반까지 은퇴세대가 주고객층이기 때문에 이런 고객층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너와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 두 군데를 선택하자는 결론을 얻고 신선식품 코너와 문화센터에 집중하여 투자하기로 하였습니다.

신선식품 코너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직접 산지와 계약하여 중간도매 경로를 없애고 생산지에서 직접 배송하여 최대한 신선도를 유지함으로써 가격과 신선도 면에서 차별화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데 소요되는계약재배, 직접배송수단 확보 등에는 자금 등 투자를 최대한 지원하였습니다. 문화센터는 반드시 일류강사를 쓰고 가능한 무미건조한 강의식이 아닌 참여형 수업을 원칙으로 하고 아이돌봄 서비스를 병행하여 애들 걱정 없도록 하고 병원과 연결하여 실버세대의 예방건강 과목을 대폭 증가시켰더니 소기의 성과가 영업성적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선택과 집중할 대상을 선정할 때는 그 업의 개념과 특성을 우선 고려대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확인하였습니다.
포스코 포항 제강공장

1993년, 삼성건설 사장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삼성건설은 아파트 건설 면에서 후발주자였고 실적도 많지 않았고 또 실력도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은 "이 정도로 아파트 지으려면 아파트에서 '삼성'자를 떼어 버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삼성아파트가 삼성그룹 전체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제고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아파트단지 한 곳을 샘플로 선택하여 모든 역량을 집중하자, 당장의 수익성은 무시하고 다른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아파트를 만들자, 디자인·레이아웃·조경·창틀·냉난방 시설, 심지어 도로 보도블록까지 누가 봐도 다른 아파트와는 차별된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자. 그렇게 선정한 곳이 마포 아파트 재건축 현장이었습니다. 목적은 삼성아파트 브랜드와 이미지 혁신에 있었습니다. 다른 임직원들은 반대가 많았습니다. 적자가 크게 나는데 구태여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지금 당장은 적자가 나서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를 보자. 반드시 분양가 상한제는 없어지고 분양가 자유화가 된다. 그때면 지금과 달리 같은 지역, 단지의 같은 평수라도 누가 지었느냐 아파트 브랜드가 무엇이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그것은 지금부터 쌓아올리는 브랜드 가치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 마포아파트를 계기로 삼성아파트 브랜드가 고양된다면 여기에서 발생하는 적자는 투자"라고 설득해서 추진하였습니다. 사실 이때를 분기점으로 삼성아파트에 대한 평가가 올라갔고 그 후 분당아파트 분양 때부터 일류브랜드로 정착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 신경영은 사람, 물건, 서비스, 자본 등이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로이 이동되는, 그래서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글로벌 세계경제시대에 국내일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세계일류가 되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실천운동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1사 1품' 운동입니다. 각 회사가 세계시장에서 일류가 될 수 있는 상품, 서비스를 최소한 1개 이상 만들어 내자는 것입니다. 각 회사가 상대적으로 강점 분야를 선택하여 거기에 경영자원을 집중하여 일류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 CDMA 시스템, 휴대폰 단말기, 삼성전기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SDI(옛 삼성전관)는 차세대 전지 등이 그 예입니다.세계 일류제품과 서비스를 만들려면 최소한 5~6년 이상의 연구개발, 투자와 인재양성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삼성이 먹고사는 주요제품은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호텔에서는 업장마다 한가지 메뉴를 최소한 국내에서만이라도 1등으로 확실하게 만들자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음식점의 사시미는 어디가제일인가, 우리 호텔이 제일인가, 아니라면 어디인가, 그러면 그 호텔 사시미가 일류인 원인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요리사의조리기술인가, 아니면 사시미 재료인 생선의 질인가, 생선의 질적 차이라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구매 시부터 질에 차이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냉장 보관 숙성시키는데 원인이 있는가, 만약 조리사가 그 원인이라면 대책으로 우리 사시미 담당 조리사를 교체할 것인가, 사시미 잘하는 일본의 호텔이나 식당에 연수를 보낼 것인가 등 철저한 원인분석 후 일등만들기에 대한 구체적 대책을 마련,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상, 경쟁력을 가지려면 선택하여 집중하여야 한다는 몇 가지 사례들입니다.

전 삼성물산 회장 mkhyun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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