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30년, 전태관과 함께여서 가능했다"
입력 2018.10.19. 18:26 댓글 0개【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친구이자 직장(봄여름가을겨울) 동료인 전태관씨가 건강을 잃으면서 음악 인생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다른 뮤지션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한다고 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죠."
보컬 김종진(56)과 드러머 전태관(56)으로 구성된 퓨전 듀오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트리뷰트 앨범 '친구와 우정을 지키는 방법'을 위해 후배가수들이 뭉친다. 12월 발매 예정인 이 앨범에 오혁, 어반자카파, 윤도현, 데이식스(DAY6), 십센치(10cm), 대니정, 이루마, 장기하, 윤종신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봄여름가을겨울의 1집부터 8집까지 정규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리메이크한다. 봄여름가을겨울과 친분이 두터운 배우 황정민도 목소리를 보탠다. 황정민의 참여는 김종진의 부인인 배우 이승진과 황정민의 부인인 샘컴퍼니 김미혜 대표와 우정이 계기가 됐다.
봄여름가을겨울 30주년을 기억하는 동시에 앨범으로 인한 수익금이 투병 중인 전태관에게 전달되는 뜻깊은 음반이다. 전태관은 2012년 신장암으로 수술을 받았으며 2014년 어깨뼈로도 암이 전이돼 연주활동을 중단했다. 이후에도 뇌, 머리 피부, 척추뼈, 골반 뼈로 전이되고 있다.
김종진은 19일 이태원 '올댓재즈'에서 "전태관씨와 오래도록 몇 개의 지켜야 할 약속을 했어요"라면서 "나중에 힘들어지더라도, 추한 모습을 결코 보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전태관씨는 그것을 지키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추하다는 단어를 쓰기는 그렇지만 전태관씨가 암 세포와 잘 싸우고 있어요. 한번도 지지 않고 지금까지 100전 100승입니다. 격투기에 친구를 내보내는 심정이에요. 한방 빗맞을까 조마조마하죠."
2000년대 들어 가요계를 바라볼 때 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방어하는데만 신경 썼다고 털어놓은 김종진은 이번에 전태관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동료들을 보면서 "너무 '가요계 겉모습만 봤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뮤지션들이 자신만을 위해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음악을 하는 거죠"라고 했다.
이번 트리뷰트 기획은 지난 4월 전태관의 부인 김영기씨가 암 투병 끝에 먼저 세상을 떠났을 당시 고인의 빈소에서 시작했다. 윤종신을 비롯해 놀랄 정도로 많은 뮤지션들이 문상을 왔다고 김종진은 기억했다.
김종진은 동료들에게 전태관을 위해 앨범에 참여해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저와 전태관씨는 같은 사람이에요. 서로의 그림자이기도 하죠. 그러니 '날 좀 도와줘'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아 쑥스럽더라고요"라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전화 50통을 받은 뒤 등 떠밀리듯 시작했다"고 했다.
이번 트리뷰트 앨범은 앨범보다 '프로젝트'라는 말을 앞세운다. 김종진은 "프로젝트라고 말하는 이유는 전태관씨를 후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했다. "앞으로 건강을 잃은 친구, 동료를 후원하는 무브먼트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캠페인처럼요"라는 마음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두 멤버는 1986년 가수 김현식(1958~1990)이 결성한 밴드 '김현식의 봄여름가을겨울'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봄여름가을겨울 정규 1집을 발표,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퓨전재즈 등 실험적인 시도부터 블루스, 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어떤 이의 꿈' '내 품에 안기어'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아웃사이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등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이들에게 헌정하는 첫 곡은 밴드 '혁오'의 보컬 오혁과 드러머 이인우가 함께 작업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이 1989년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수록곡으로,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 보컬리스트 제이 마리가 참여, 동부 힙합 스타일로 반전시켰다. 편곡 작업 중 완성한 뉴잭스윙 풍의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오면'도 있다. 이날 오후 6시 두 가지 버전 모두 공개됐다.
돌아보면, 봄여름가을겨울이 발표한 곡 중 미국 여성 보컬이 참여한 노래가 있다. 1992년 발표한 3집에 실린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다. 미국에서 녹음, 믹싱을 한 음반으로 미국 여성 보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코러스를 맡겼었다.
그랬던 김종진은 최근 K팝의 글로벌 진출을 새로워했다. "지금은 한국 음악이 세계로 뻗어져 나가는 때죠. 세계에서 순 한국말로 노래가 불려져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사실 1998년 데뷔했을 때는 상상을 못했어요. 한국을 세상에 알리는, 대중음악가가 자랑스러워요."
김종진은 30주년을 맞은 소감을 두 글자로 하면 '감사', 7글자 하면 '감사 감사 감감사'라며 웃었다. "저는 1962년생 뮤지션이에요. 안타까운 것은 제가 음악을 할 때 1962년생 모두 뮤지션이 되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남은 뮤지션은 저 하나죠. 한국에서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구나'라는 것을 깨달아가죠. 그런데 전태관씨랑 함께 해서 가능했어요."
지난 30년은 너무 치열하게 음악을 했다면서 앞으로 30년 더 음악을 더 할 수 있다면 "편하게 놀면서, 힘들지 않게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오늘 30년을 돌아보니 대하소설이 써진다"며 웃음을 더했다.
전태관과 함께 정한 '투 두 리스트' 중 거의 다 이뤘지만 두 가지를 아직 못 이뤘다. 버스 타고 다니던 시절 '당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차였던 '그랜저'를 한 손으로 핸들 돌리면서 1만석 공연장에 들어가는 대단한 뮤지션이 돼 보자'는 꿈은 이뤘다.
다만 백발이 성성해도 무대 위에서 섹시한 뮤지션, 또 무대 위에서 죽자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이 말을 내뱉은 후 먹먹해진 듯 눈시울을 붉히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김종진은 "이제 그것도 이루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어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 갖춰진 무대에서 음악을 해야지만 무대 위에서 죽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제가 그리고 우리가 딛는 모든 땅이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음악을 하다가 떠나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죠."
김종진은 앨범 기획을 할 때 경영학과 출신인 전태관에게 여전히 묻는다고 했다. "저희가 앨범을 테이프로도 만들 계획이에요. 그래서 태관씨에게 3000장 찍을까, 3만장 찍을까 물었죠. 그랬더니 요즘 플레이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며 300장만 찍으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선생님, 아버님 같이 느껴지는 친구에요. 어릴 때 생각한 우정보다 지금 생각하는 우정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많은 걸 알게 해준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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