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가을 이기심

입력 2018.10.15. 17:09 수정 2018.10.15. 17:11 댓글 0개

이 맘때 가을을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큰 즐거움이다. 도심 거리마다 공원마다 어딜 가나 은행나무 천지다. 굳이 채비를 하지 않아도 쉽게 맛볼 수 있는 호사니 이만큼 가성비 좋은 행복도 찾기 쉽지 않다. 그 길을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광주월드컵경기장 둘레길에도 나주 남평 은행나무길에도 즐거움이 널렸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심어진 대표 가로수 수종이다. 당초 미루나무나 버드나무 등이 자리하던 자리를 은행나무가 급속히 대체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가로수로서의 기능인 공기 정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낙엽수인 은행나무는 아황산가스 등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한국도시조경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보면 대기 오염물질 흡수력의 경우 잎이 작은 상록수보다 잎이 큰 낙엽수가 평균 7배 이상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중에서도 은행나무는 오염물질 흡수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오염농도에 비례해 흡수능력이 높아지는 성질까지 있어 가로수로서의 최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병충해에 강해 약물 살포 등이 필요없고 심근성 수종으로 뿌리가 도로 위로 나와 보도의 시멘트나 블럭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적어 관리가 용이한 것도 은행나무가 가진 강점중 하나다. 특히 병충해에 강하다. 은행나무 몸속에 있는 살균·살충 성분인 ‘플라보노이드’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로수 수종 중 하나인 플라타너스의 경우 가을이면 모기 송충이 벌레들이 들끓는데 비해 은행나무엔 그런 벌레 유충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무가 곧고 잎이 무성한데다 다른 가로수에 비해 산소배출량이 많은 것도 강점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가로수로 심어지는 은행나무 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 2016년 말 기준 전국 가로수는 735만3천본. 이 가운데 은행나무는 약 101만2천본이었다. 이는 전체 가로수의 13.8%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수년새 은행나무가 가을 천덕꾸러기 전락하고 있다. 냄새 때문이다. 살굿빛 과육이 터지면서 나는 구릿구릿한 냄새가 그렇게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모양이다. 말 그대로 ‘옥의 티’다. 나무의 생존본능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냥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다. 덕분에 매년 가을만 되면 은행나무 악취 논란은 행정기관의 큰 고민거리가 돼왔다. 올해도 변함없이 없다. 물론 다양한 해법들이 검토되곤 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러는 사이 애먼 은행나무들만 베어져 나가고 있다. 실제 최근 5년간 전국 11개 광역자치단체에서 5천30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제거됐다고 한다.

가지려고만 하고 얻으려고만 하는 것은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갖고 싶고 얻고 싶다면 작은 불편함쯤은 감내할 줄 알아야 한다. 냄새를 운운하는 사람은 늦가을 은행나무길이 빚어내는 장관을 감상할 자격이 없다.

윤승한 지역사회부장 ysh68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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