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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객선침몰]˝그날 무슨 일이…˝ 10대 미스터리

입력 2014.04.17. 15:57 댓글 0개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대형 여객선 '세월(SEWOL)'호 침몰 사건이 최악의 참사로 치달으면서 '4월16일 오전' 침수·침몰 당시 상황과 원인을 둘러싼 의혹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사고 시점에서 인력 배치, 생존자 유무, 매뉴얼 준수 여부는 물론 급선회로 인한 전복, 암초에 의한 좌초, 불법 증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8시10분? 8시45분? 8시58분?

사고 초기 해경은 16일 오전 8시58분께 승객의 가족이 조난 사실을 신고해 최초로 인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양수산부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보다 3분 빠른 8시55분께 세월호에서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조난신고를 했고 제주VTS는 곧바로 유선을 통해 해양경찰 122에 사고 상황을 전파하고 긴급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기록됐다.

반면 경기도교육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보다 훨씬 앞선 8시10분께 제주해경에 침몰 상황에 대한 연락이 취해진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러나 제주해경 측은 "세월호와 연락을 주고 받은 적이 없다. 학교 측에서 왜 그렇게 파악했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생존자들은 "8시40∼8시45분께 이상 신호가 있었다. 잠시 배가 기우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고 또 일부 목격자는 "세월호가 8시께부터 사고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시간 가량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궁에 빠지면서 원인 분석도 오리무중이다.

◇'있다 vs 없다' 생존자 유무

"살아 있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들이 날아든 것은 16일 밤 10∼11시 사이. "전화가 안 터진다. 지금 배 안인데 여자애, 남자애들 몇몇이랑 여자애들 울고 있어. 나 아직 안 죽었으니까 안에 사람 있다고 좀 말해 달라"는 내용이다.

생존 카카오톡은 17일 오전에도 10여 건이나 날아들고 있다. 휴대전화 위치 추적결과 메시지 발신지도 사고 지점 근처인 진도 조도 기지국으로 확인됐다. 여객선 안에 공기가 있는 '에어 포켓'에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구조 당국과 이동통신업계는 "휴대폰이 구명정 등 해상에 있을 때 전송 실패한 메시지를 나중에 재송신하는 경우가 있다"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매뉴얼 무용지물?

당국이 초동 대응에 우왕좌왕하면서 과연 비상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배가 이미 기울기 시작한 뒤에야 조난 신고가 접수됐고 경보를 발령한 뒤에도 구조작업은 만시지탄에 그쳐 선체 진입을 통한 구조는 더디기만 한 실정이다.

해경은 '승선인원의 110%까지 구명조끼를 법적으로 비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일부 생존자와 실종자는 SNS 등을 통해 "구명장치가 부족했다"고 전했다. 해난구조대와 잠수부 투입 시기도 늑장 논란을 낳고 있다. 침몰 직전임에도 "객실에 남아있으라"고 선내 방송을 한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수학여행은 150명 이내로 보내도록 권고됐음에도 325명이 한꺼번에 배를 탄 점도 매뉴얼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선원들이 먼저 탈출했나

사고 당일 1차 구조자들을 태우고 팽목항에 도착한 선박은 조도면 급수선 707호. 47명의 구조자 중 선원이 10명, 승객이 37명이었다. 이후 2, 3차 구조에서 선원들의 모습은 없었다. '승객 대피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승무원 지침을 어긴 채 먼저 탈출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옆에 직원에게 줄 좀 던져주라고 했더니 듣지도 않고 빠져 나가기 바빴다. 나도 살기 위해 구명조끼를 찾았고 지금 빠져 나가지 않으면 죽겠다 싶었다"는 한 선원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고명석 해경 장비기술국장은 "승객탈출 의무를 다하지 않고 먼저 탈출했다면 선박매몰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타 선장' 문제 없었나

세월호의 원래 선장은 신모씨. 그러나 사고 당일에는 이모(60)씨가 대타로 나섰다. 휴가 간 신씨를 대신해서다. 선사 측은 "이씨가 같은 노선을 수십차례 운항한 베테랑"이라고 밝혔지만 벌건 대낮에 300명 가까운 승객이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책임은 불가피해 보인다. 결과론적으로 인력 배치에 대한 논란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 등은 "대타 선장이 투입되면서 항로 이탈이나 과속 운항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과잉회전이 직접적 원인(?)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 원인을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와 유사한 '외방경사'로 추정하고 있다. 대형 선박이 급선회할 때 GM(선체무게중심)이 회전방향의 바깥쪽으로 쏠리면서 원심력에 의해 생기는 '기울음 현상'이다. 유속이 빠른 지역이고 배가 바깥쪽으로 기울면서 선내 컨테이너나 화물차 등이 외벽에 부딪혀 사고가 빚어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테랑 선장'이 위험성을 무릅쓰고 굳이 급히 방향을 튼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다. 선장 이씨도 해경 수사에서 '사고 당시 누가 조타기를 잡았느냐' '사고 원인이 정확히 뭐냐'는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암초에 의한 좌초였나

암초에 걸렸느냐도 논란이다. 일각에서는 사고해역이 수심이 낮은 암반지대고 바닷물의 흐름이 빨라 암초와 부딪혔다면 구멍 등이 생겨 순식간에 바닷물이 유입됐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목포해양대 해양운송시스템학부 임긍수 교수는 "해당 항로는 몇 만t급 선박이 지나다니는 수로로, 암초 얘기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고 해운조합 관계자 역시 "사고 해역에서 암초에 걸렸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선체 결함? 내부 폭발?

'꽝'하는 소리와 함께 침몰했다는 진술에 따라 선박 내부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 지난 2월 정기검사를 통과했지만 선체 결함 가능성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김진환 카이스트 해양시스템공학 전공 교수는 "선체를 건져 올려 파악하기 전까지는 원인을 예단할 수 없지만 '꽝'하는 폭발음이 났다면 흔치 않은 사례이긴 하지만 엔진룸 쪽에서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탑승객수 오락가락 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밝힌 최종 탑승인원은 475명. 최초 477명이던 것이 459명으로 줄었다가 다시 462명으로 늘었다가 다시 13명이 늘어 최종 '475'로 확정됐다. 일부 화물 운전기사들이 선표없이 배에 승선하는 과정에서 명단 파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선사측 해명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해경은 정확한 승선인원을 파악키 위해 인천항여객터미널의 개찰구 폐쇄회로(CC)-TV를 통해 승선자 수를 일일이 확인했다. 탑승자 수가 이틀새 4차례나 변경된 데 대한 의구심을 해소하기엔 명쾌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불법 증축' 여파인가

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건조됐으며 18년 동안 가고시마와 오키나와 구간을 카페리 여객선으로 사용한 후 중고여객선으로 한국에 매각됐다. 이후 승선정원이 804명에서 921명으로 늘었고 무게도 6586t에서 6825t으로 239t이 늘어 객실 부분이 증축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월호 조타수 박모(61)씨는 "선박의 선미 부분 증축으로 무게 중심이 높아졌다. 승용차로 치면 차량 지붕에 짐을 잔뜩 싣고 운항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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