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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안병은 "정신질환,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것"

입력 2020.11.17. 15:12 댓글 0개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출간
"사회적 편견에 질환 인정 않고 치료시기도 놓쳐"
"폐쇄적 정신병원서 탈수용화해야…환자 고립시켜"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안병은 정신과 의사가 17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한길사)' 출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11.17.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현재 10만명 정도가 정신병원에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80%는 병동이 아니라 밖에서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는 충분히 밖에서 살 수 있어요. 편견과 선입견이 문제입니다. 시설에만 가둬놓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요? 그들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무서운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가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 안병은 행복한우리동네의원장이 중증 정신질환자 치료와 세계 곳곳의 의료 봉사를 다니며 느낀 점을 실천하는 자신의 '혁명'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안 의사는 17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중구 순화동 복합문화공간 순화동천에서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안 의사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고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가 그들이 나고 자란 곳에서 함께 일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 NGO 세계의심장 상임이사, 중증 정신질환자의 더불어 삶을 위한 사회적기업 행복농장 이사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안 의사는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것'이라고 강조했다.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갔었는데 거기엔 정신병원이 없었습니다.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인지 낙인이나 편견도 적었습니다. 하루는 주민 한 명이 찾아와 다른 주민들이 한가득한데도 저한테 '나도 환청이 들리고 망상이 보인다며 약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냥 아픈 것, 질환으로 인식되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편견이 심하죠."

그는 "한국에서 '조현병 환자'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물어보면 다 '무섭다'고 한다. 광폭한 살인자, 언제 살인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들로 인식한다"며 "그런데 저와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을 섞어 놓고 저를 찾아보라고 하면 대부분 못 찾을 것이다. 저는 그분들이 주변의, 속해 있는 사회의, 국가의 환경에 의한 피해자라고 본다"고 전했다.

안 의사는 자신이 현재의 삶을 살게 된 계기도 밝혔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회 수련회에 갔었는데 기도원에 중년 여성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것을 봤다. 왜 그런지 물어보니 미쳐서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성경에도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줘야 한다고 했는데 기도원에서 그런 것이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그런 부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안병은 정신과 의사가 17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열린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한길사)' 출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0.11.17. kkssmm99@newsis.com

그는 우리나라 정신병원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병원이란 시설 자체가 폐쇄적이고 또 그러한 치료 방식이 환자들을 고립되게 하고 병을 낫게 하기보다는 트라우마를 겪게 하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인해 정작 환자들이 정신질환 초기에 자신이 질환이 있음을 밝히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적정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가 1978년 정신보건개혁법 제정을 통해 정신병원을 없앤 사례도 들었다. 중증 정신질환자가 일으킨 사건 사고 등이 병원 폐쇄 초기에는 비슷한 수치를 보였지만 지금은 현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안 의사는 편견과 선입견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환자들과의 직접 만남'을 권했다.

안 의사는 "저는 꼭 만나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만날 수가 없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거나 사회에 나와 있어도 고립된 채 살기 때문이다"라며 "우린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다. 용기도 없다. 왜? 만난 적이 없으니까"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렇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온다. 환자들이 나쁜 일을 했을 때만 크게 알려진다. 노출을 좀 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많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몰라서 그렇지"라고 보탰다.

안 의사는 정신병원이란 시설의 최소화를 말한다. 수용 위주의 정책을 탈피하고 탈수용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입원이 꼭 필요한 사람을 입원시키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입원할 필요가 없는데 단지 조현병이란 이유로 무조건 입원시키고, 방치하고 그러다 보니 본연의 증상보다도 입원 당함으로 인해 다시 사회로 나오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1960년대 미국에서 연구결과가 나왔던 것들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사회가 정신질환자를 분리하고 배척할수록 그들은 치료를 기피하고 자신의 병을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며 "분리와 배척은 정신질환 자체를 범죄로 만들려는 시도다. 이는 자살, 자해, 살인 등 더 큰 사회적 문제만 낳을 뿐"이라고 했다.

안 의사는 "정신병원은 폐쇄 방식이 아닌 개방 형태로 가야 한다. 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 휴대전화를 뺏겨야 하나. 미친 사람은 전화통화를 하면 안 되는 건가.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안 돼 있고, 대처가 획일적이다. 가장 심각한 상황을 기준으로 그러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그 기준에 대입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폐쇄병동의 비율은 몇 %여야 할 지, 이런 것도 논의해야 한다"며 "저는 입원 단계를 최대한 막고 초기에 빨리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사진 = 한길사 제공) 2020.11.17.photo@newsis.com

안 의사는 정신질환자들이 탈수용화를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치료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직접 세탁소, 운동화 빨래방, 편의점, 카페를 열어 정신질환자를 고용해 함께 일했다.

현재는 네덜란드의 돌봄농업을 벤치마킹해 충남 홍성에 사회적 기업 '행복농장'을 세웠다. 농업을 중심으로 정신장애인 직접재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책에는 그가 중증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망상이나 환청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세상,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세상, 자신의 아픔을 인정받을 수 있고 마음껏 마음을 아파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혁명의 여정이 담겼다. 그 혁명의 시작이 정신질환자를 대하는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를 깨부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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