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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소프트파워와 융합교육
입력 2020.09.15. 11:14 수정 2020.09.20. 19:57 댓글 1개"4차산업은 소프트웨어에서 시작된다(Thomas Frey)", "미래는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다(Mark Andreessen)."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한 미래학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영향력과 힘을 '소프트파워'라고 한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기업들은 소프트웨어로 수익모델을 만들고 관련 산업군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동차, 선박과 같은 제조공장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공정과 유통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외수출을 위한 거점 공장이나 마케팅 지점이 필요 없다. 공장이 없으니 외국에 세금을 낼 이유도 없다. 물론 컴퓨터와 서버 등의 하드웨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일 뿐, 다수는 소프트웨어로 작동한다. 예컨대 1960년대 F-4 전투기의 소프트웨어 비중은 8%였지만, 2010년대 F-35 전투기의 소프트웨어 비중은 90%대로 증가하였다.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는 하나이지만, 앱(App: Application)과 게임이라는 소프트웨어는 무궁무진한 것이다.
소프트웨어의 대명사로는 택시가 한 대도 없는 세계적인 택시 앱 우버(Uber)와 호텔이 한 곳도 없는데 숙박업계의 세계 1위 앱인 에어비엔비(Airbnb)가 거론된다. 국내에는 '국민 앱' 카카오톡이 있다. 2010년 카카오톡이 출범할 당시, 국내 포털의 1위는 네이버였다. 그때도 지금도 네이버는 국내 포털의 절대강자다. 그런데 카카오는 네이버와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특성화로 차별화했다.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한 결과 게임, 커머스,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접목을 통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특히 라이언, 무지, 프로도 등의 카카오프렌즈라는 캐릭터 라이선스를 통한 온·오프라인의 융합 상품은 네이버가 따라올 수 없는 카카오만의 영역이다.
카카오의 혁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7년 전통적인 금융업계의 관행을 깨고 카카오뱅크를 설립하였다. 단 한 곳의 은행지점이 없는 카카오뱅크는 올해 1분기에만 18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이것은 모바일 금융 서비스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융합 사례이다. '세계미래보고서 2055'에 따르면 구글, 삼성, 애플 등의 글로벌 기업이 소프트웨어에 10조원 이상의 투자를 한다. 이것은 소프트파워에 대한 미래와 전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학과 기관들은 소프트웨어보다 하드웨어 분야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지난 50여 년간 대한민국의 주요산업이 자동차, 철강, 조선업, 반도체 등 주로 하드웨어 산업에 대한 의존이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수차례 언급했듯이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노벨상이나 세계대학 평가에서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뿌리 깊은 교육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부모와 학생들의 꿈은 '명문대 진학'이고, 이를 위한 교육목표는 '대학입시'이며, 그 대상과 방법은 '국·영·수'와 '수능과 내신'이라는 현실. 이를 두고 미래학자 앨빈토플러는 '21세기 한국비전'에서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융합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은 수상소감에서 공통적으로 창의적인 융합 연구에 수십 년 이상 몰두했다고 회고한다. 창의적인 연구이기에 융합할 수밖에 없고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팠기에 차별화된 성과를 달성한 것이다.
최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융합교육이 학문과 학문의 무조건적인 결합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어울리는 것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것도 있는 법. 융합의 우선순위는 인접 학문이 먼저이지, 원거리의 학문이 먼저가 될 수 없다. 시대적 대세라고 해서 무조건 융합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다. 50대 50의 융합도 있지만, 90대 10의 융합도 있다.
4차산업 시대에 융합을 바라보는 관점은 ICBM(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과 AI(인공지능) 등 기술혁신에 따른 산업과의 융합,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스마트팩토리와의 융합, 5G 등 통신혁명에 따른 초연결사회와의 융합 등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주도하고 그 근간은 교육(敎育)이다. 가르치고 육성하는 일, 이것은 교육기관은 물론 관련 기관의 리더들이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융합교육에 대한 관심을 갖는 일, 그리고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동기부여를 하는 일, 즉 교육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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