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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돌 릴레이 인터뷰]②진실한 기록자, 정수만 전 유족회장

입력 2020.05.11. 09:01 댓글 0개
5·18 자료 30여 만쪽 수집·정리, 진상규명 새 장 열어와
"광주 투입 25개 부대 상황일지 찾아 행적 재구성해야"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기록만이 5·18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고 봅니다."

'걸어 다니는 5·18 백서'로 불리는 정수만(74) 전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장은 11일 "5·18 진상 규명은 기록으로 시작해 기록으로 끝내야 한다. 5·18 전후 군의 행적을 기록으로 검증하고 재구성하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40년 동안 5·18을 가장 체계적으로 기록한 산증인이자, 신군부의 만행을 입증하는 기록과 논거를 제시해 5·18 진상 규명의 새 장을 열어온 연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5·18 자료 수집과 실증적 기록, 증언 확보에 발 벗고 나선 것은 1986년부터다.

1980년 5월21일 계엄군의 발포로 남동생을 잃은 그는 이듬해 첫 추모 행사를 주도했다가 8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광주시민의 의로움을 악의적으로 왜곡·폄훼하는 신군부 세력을 보고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국회와 정부 기록물보관소, 육군본부, 검찰·경찰, 국군통합병원, 기무사 등 기록이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 찾아 나섰다. 미국 UCLA·하버드대학을 비롯해 독일·일본 등 해외도 마다치 않고 사재를 털어 자료 확보에 매달렸다. 정보공개 청구 소송도 불사했다.

5·18당시 정황과 희생·부상자들의 인적사항, 사상 경위 등이 담긴 군부대 상황 일지, 검찰 검시 조서·검안 기록, 국군통합병원 진료 기록 등이 속속 손안에 들어왔다.

국군이 시민을 학살해 암매장하고,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정황을 정리하려면 증언을 들어야 했다.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그 날의 참상을 보고 듣고 느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다.

찾은 기록과 증언을 비교·분석해 사료로 남겼다. 5·18 당시 희생자 수와 사인을 다시 정리했고, 5월 항쟁 희생자 151명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책 등 5·18의 실체와 국가폭력의 상흔을 오롯이 알리는 서적들도 펴냈다.

기록을 통해 계엄군이 여성 3명을 성폭행한 사실, 5·18 피해자 30여 명이 계엄당국에서 풀려났다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실 등을 밝혀냈다.

정 전 회장은 시민들이 군의 집단 발포 이후 불가피하게 무장한 기록(1980년 5월21일 오후 1시30분 최초 무장)을 찾아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군은 발포 관련 기록을 철저히 은폐·조작했지만, 국방부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기관 기록을 교차 검증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포가 이뤄졌는지도 밝혀왔다.

신군부가 '시민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고 조작한 기록(5월21일 집단 발포로 의식 불명 상태였던 류영선이 23일 교도소를 습격했다고 날조 등)'을 찾아 1997년 대법원 판결 때 군의 날조를 입증하기도 했다.

지원동·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 상황 누락 등 군이 시민 학살과 만행을 은폐하려 한 정황도 수없이 밝혀냈고, 5·18 학살자 재판 회부를 위한 광주·전남 공동대책위원장을 맡아 전두환을 법정에 세우는 데도 공을 세웠다.

[광주=뉴시스] 신대희 기자 = 정수만(74) 전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장. sdhdream@newsis.com

역사를 왜곡해온 극우인사 지만원씨가 사법적 단죄를 받는 데도 그의 기록과 증언이 핵심 역할을 했다.

그간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9차례의 5·18 진상 조사 기록과 미국의 5·18 기밀문서 내용을 낱낱이 분석하고, 5·18 관련 기록물을 총체적으로 정리(데이터 베이스화)하는 작업도 정 전 회장이 해냈다.

그가 수집해 국내에 노트북이 들어오기 전부터 정리해 온 5·18 자료는 30여 만쪽에 달한다. 300쪽 분량의 책 1000권은 족히 만들고도 남은 분량이다.

수십 년간 하루 3∼4시간만 자고 기록 정리 작업에 매진, 인물·날짜·쟁점별로 정리해놓은 목록만 8만여 개에 이른다.

그 결과 이제 그의 기록은 가히 '5·18의 보고(寶庫)'로까지 불릴 정도가 됐다. 그는 20년 넘게 유족회를 지키며 5·18특별법과 국가기념일 제정도 이끌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최근 출범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사실상 마지막일 것"이라며 '기록물 확보와 교차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전 회장은 "조사위가 31사단 작전상황일지 3권, 10장밖에 공개되지 않은 항공대 상황일지, 공병대 일지를 비롯해 광주에 투입된 25개 부대의 상황일지를 전부 찾아야 한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5·18 전후 군의 모든 행적을 일자·작전·상황별로 재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 기록 대부분이 왜곡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기록과 증언을 대조·검증해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야 한다. 군의 만행과 어떻게 역사를 왜곡해왔는지 낱낱이 밝혀 민주유공자들의 명예를 회복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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