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완도 법화사지 사적 지정 본격화

입력 2019.11.13. 10:42 수정 2019.11.13. 10:42 댓글 0개

완도 법화사지에 대한 사적 지정 작업과 학술적 의미 규명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완도군과 장보고글로벌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장보고해양경영사연구회와 목포대 사학과가 주관한 학술회의가 지난 8일 장보고기념관에서 '완도 법화사지 사적 지정과 활용 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완도 법화사지는 지난 1990년 전남도 지정 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발굴조사를 실시,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주름무늬병과 해무리굽청자편·기와편, 고려시대 연화문수막새와 암막새·명문기와·청자편 등을 발견했다.

이후 2016년 동서종합문화재연구원의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2017년부터 3년 간 정밀 발굴을 실시한 결과, 사찰의 담장을 비롯한 전체 사역(寺域)이 밝혀졌으며 출입 시설을 포함한 수많은 유적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다.

이러한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법화사지의 해양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하며, 국가 사적으로의 승격과 보존·활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학술회의를 마련했다.

회의는 목포대 한정훈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강봉룡 교수의 '한국 해양사에서 완도 법화사지의 위치'라는 기조 발표를 시작으로 '완도 법화사지 발굴조사 현황과 성과', '고려시기 해양 불교 신앙과 완도 법화사', '삼별초 항전과 완도 법화사', '완도 법화사지 유적의 보존과 활용 방안'의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종합 토론엔 목포대 최성락 명예 교수가 좌장을 맡고 김지민, 권덕영, 전영준 교수를 비롯한 6명의 토론자가 폭넓은 의견을 개진했다.

법화사지는 9세기 장보고 대사가 창건하여 운영되다가 851년 무렵 폐사, 고려시대 때 중창돼 사찰의 기능을 하면서 송징 장군과 삼별초의 군사 기지로도 활용되었다가 또 다시 폐사됐다.

이후 조선시대 후기에 재창되어 운영되다가 폐사된 사지(寺址)임이 그동안의 발굴 성과와 이번 학술회의의 주제 발표·토론 등을 통해 학술적으로 증명됐다.

또한 완도가 장보고·송징·이순신의 중요한 활동 지역이었고 서남해안의 지정학적 요충지로 한국 해양사의 거점 지역이었음이 드러났으며, 법화사지가 삼별초 항쟁의 중심지임이 부각됐다.

사적 승격에 대해서 주제 발표를 한 김희태 문화재전문위원은 세 가지 방안을 제안하였다.

'완도 청해진 유적' 확대 지정, '완도 청해진 유적과 법화사지' 변경 확대 지정, '완도 법화사지' 신규 지정 등이다.

토론에서는 '완도 청해진 유적'의 보호구역 확대를 통한 사적 승격의 방안이 제시됐다.

완도군 관계자는 "법화사지의 사적 승격과 정비 등에 최선을 다하며, 학자들의 고증과 군민들의 여론을 수렴하고, 여러 여건을 감안하여 신중하게 법화사 재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해양사의 핵심 인물인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고려시대 송징, 조선시대 이순신의 활동과 유적지를 재조명하고 이들을 선양하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완도=조성근기자 chosg11@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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