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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건설⑨]콜롬보 테러 이겨낸 현지경영···현대건설 '킬스시티' 가보니

입력 2019.10.31. 06:00 댓글 0개
블랑카가 불지른 반한감정…현지에서 더이상 찾아볼 수 없어
일자리 보국안민 현대건설, 킬스시티 현지근로자 3200명 고용
테러 사태 빠른 수습 뒤에는 휴먼 매니지먼트 빼놓을 수 없어
야당 집권 유력 다음 달 대선 이후 메가 프로젝트 이어질 듯
【콜롬보(스리랑카)=뉴시스】박영환 기자 = 현대건설이 스리랑카의 행정수도인 콜롬보 시내에 짓고 있는 킬스시티의 전경.

【콜롬보(스리랑카)=뉴시스】박영환 기자 = "지난 2000년대 초 만해도 스리랑카 현지에서는 반한 감정이 꽤 높았어요. 우리나라 한 개그맨이 한국말을 하는 이 나라 근로자의 말투 를 흉내내며 인기를 얻은 사실이 현지에 알려진 데다, 한국에서 일하며 부상을 입은 자국 노동자들의 실상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지에서 이러한 기류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지난 28일 오후 12시5분(현지시간) 스리랑카의 행정수도 콜롬보 시내에 위치한 한 중국 식당. 이헌 주 스리랑카 한국 대사는 현대건설, SK글로벌, 경남건설, 효성중공업, 코트라, 한국수출입은행 등 현지 진출 건설사와 공기업들을 대상으로 연 해외건설 수주지원협의회 직후 참석자들과 오찬을 하는 자리에서 이같은 소회를 털어놓았다. 2004년 한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사장님 나빠요'를 연발하던 개그맨이 부른 해프닝을 언급한 것이다.

이 대사는 뉴시스를 비롯한 참석자들을 상대로 격세지감도 토로했다. 지난 4월21일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활절 테러가 현지에서 발발하며 내전설이 돌고 다음 달 대선까지 앞둔 민감한 시기지만, 반한 정서는 이곳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이 대사의 진단이다.

사납던 민심의 물꼬를 돌린 일등공신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다. 그 정점에 일자리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건 현대건설이 있다. 이 건설사는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스리랑카에서 건설부문 단일 사업장으로는 가장 많은 현지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수도인 콜롬보시 중심가에 이 회사가 착공한 킬스시티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만 3200여명. 현대건설은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관광으로 먹고 살며, 우버 운전자가 젊은이들의 구직 일순위인 이 나라 일자리 창출의 일등공신이다.

【콜롬보(스리랑카)=뉴시스】박영환 기자 = 현대건설이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짓고 있는 킬스시티 공사현장의 근로자들. 현대건설은 스리랑카 현지 건설부문 단일 사업장으로는 최대인 3200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있다.

◊단일 사업장 최대 일자리 창출…킬스시티만 3200여명

가랑비가 아침부터 흩뿌리던 29일 오후 3시30분, 콜롬보 시내 글레니 스트리트에 위치한 킬스시티 공사현장. 1층 입구에서는 형광색 상의를 입은 현지 근로자 10여 명이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안전모를 각각 착용한 채 작업 삼매경에 빠져 있다. 같은 건물 2층으로 이동하자 아직은 골조만 앙상한 바닥 위 받침대에 몸을 실은 채 천장에 배선 작업을 하는 근로자 2명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스리랑카는 물론 인도나 필리핀 등에서 건너온 근로자들이 어울려 근무하고 있다.

킬스시티는 현대건설 서남아시아 경영의 현장이다. 김태희 지사장(상무)을 비롯한 한국인 임직원 45명은 이곳에서 불교, 이슬람교도 현지 직원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빡빡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오전과 오후 1차례씩 티타임을 거르지 않는 현지 근로자들에 속을 태우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영국인 프로젝트 매니저(PM)들과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면서도 시스템 폼을 활용해 건물 한 층을 6~7일에 올리는 속도전을 펼치고 있다.

김태희 지사장은 "공사는 텅 빈 땅 위에 건물을 세워가는 작업이지만, 그 요체는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라며 "이러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핵심은 결국 휴먼 매니지먼트"라고 평가한다.

지난 29일 오후 스리랑카 콜롬보 현지의 킬스시티 공사 현장 사무소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중인 김태희 현장소장(상무).

5억2300만 달러(6108억원)짜리 빌딩 프로젝트의 공정률은 현재 50%. 콜롬보 시내 중심가 4만2836㎡(1만2967평)의 노른자 위 땅에 ▲극장과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 상업시설 1개동 ▲콘퍼런스 빌딩 1개동 ▲800실 규모의 호텔 1개동 ▲31층짜리 오피스 빌딩 1개동 ▲아파트 2개 동을 짓는 초대형 빌딩 공사는 오는 2021년 2월 준공될 예정이다.

공사 발주처는 스리랑카의 존 킬스 홀딩스다. 스리랑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10%에 달하는 '스리랑카의 삼성'이라는 게 현지에서 근무하는 현대건설 이중희 공무부장의 설명이다. 현대건설이 스리랑카에서 빌딩 공사를 따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 건물은 지난 2012년 말 입찰 당시 스리랑카 출신으로 런던에서 활동하는 영국 국적의 세계적 디자이너 세실 발몬드가 설계를 담당해 화제를 불렀다. 현대건설은 당시 일부 건설사들이 초청받은 지명경쟁 입찰에서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KLCC) 등 초고층 빌딩 공사 경험이 풍부한 삼성물산을 제쳤다. 공사 수주는 가격 경쟁력 외에도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일찌감치 현지경영의 시동을 걸어온 현대건설이 쌓아온 평판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됐다.

◊수백명 목숨 앗아간 4·21 콜롬보 테러 견뎌낸 현지경영 호평

【콜롬보(스리랑카)=뉴시스】박영환 기자 = 이헌 주 스리랑카 한국대사가 28일(현지시간) 스리랑카 콜롬보 시내에 있는 한 중식당에서 현대건설, 경남기업 등 현지 진출 건설사 임직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현지경영이 빛을 발휘한 때가 지난 4월21일 콜롬보 테러사태 당시다. 이슬람국가(IS)가 호텔, 성당 등에서 폭탄을 터뜨려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간 부활절 테러는 현대건설의 서남아시아 경영을 시험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콜롬보 시내 중심가를 흐르는 호수를 따라 위치한 샹그릴라 호텔 등 유명 호텔에서 연쇄 폭탄 테러가 발발하자 지역 경제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현대건설도 컨틴전시 플랜 수립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철수 가능성까지 저울질해야 했다.

스리랑카 현지에서 근무하는 신민규 현대건설 대리는 "현장 근로자들도 절반가량이 한동안 결근하는 사태가 빚어졌다"면서 "남은 직원들도 불교를 믿는 다수가 이슬람을 신봉하는 소수와 반목하며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마저 점쳐지던 IS 테러사태는 점차 수습됐다. 현장을 떠난 근로자들도 하나둘씩 돌아오는 등 테러의 여파는 빠른 속도로 사그라졌다. 킬스시티 현장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들의 경우 통상 현지 기업들보다 20~30%가량 임금수준이 높은 데다, 평소 근로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는 등 공을 들여온 현대건설의 현지경영이 주효했다는 평이다. 이러한 유무형의 자산은 결국 스리랑카 역내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게 김태희 지사장의 설명이다.

현대건설은 야당의 집권이 점쳐지는 스리랑카의 다음 달 대통령 선거를 주시하고 있다. 마힌다 라자팍스 전 대통령이 이끄는 야당이 집권하면 현 정부 하에서 멈춰 섰던 카지노 허가가 다시 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킬스시티 호텔 1개동에 이미 조성한 카지노 공간에 관련 실내장식을 설치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추가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일대일로 정책상의 주요 기항지인 이 나라에서 친중국 성향의 라자팍스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 중국의 국영 건설사인 차이나스테이트가 바다를 메워 개발한 수백만 평의 매립지 위에 각종 시설과 빌딩을 올리는 또 다른 메가 프로젝트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김 지사장은 "중국의 차이나스테이트에서 바다 몇 백만 평을 매립해 이중 60%의 개발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곳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 올라가고 여러 시설도 들어설 텐데, 스리랑카 현지 기업이나 중국 건설사들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현재 이곳에서 나올 발주공사를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구축한 리소스(자원)를 활용해 스리랑카에서 지속적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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