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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의 경고 "한은, 금융안정 좇다 금리인하 실기···저물가 우려키워"
입력 2019.10.28. 12:00 댓글 0개물가상승률, 목표치 2%와 괴리커져…"구조적 제약때문"
"가계부채·자본유출입 등에 금리높여 대응한것이 잘못"
"한은, 우선순위 바꿔 물가안정 집중해야 저물가 극복"
【세종=뉴시스】장서우 기자 =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도록 돼 있는 현재의 통화 정책 운용 체계가 최근의 '저(低)물가'를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화 당국이 정책 목표의 우선순위를 바꿔 물가 안정을 적극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침체된 경기 회복을 저해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경고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8일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13년부터 물가안정목표를 지속해서 밑돌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가상승률과 물가안정목표 간 괴리는 2010~2012년 0.1%포인트(p) 수준에서 2013~2015년 -1.9%p로 커졌다가 2016~2018년 -0.5%p로 낮아진 후 올해부터 -1.6%p로 다시 커졌다.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통화 당국이 금융 안정도 동시에 꾀해야 하는 구조적인 제약 때문에 통화 정책이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2011년 9월 제정돼 12월부터 시행된 한국은행법은 제1조 제2항에서 한은이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 금융 안정에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이 물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제6조 제3항과 상충할 소지가 높다고 KDI는 봤다.
KDI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유로존(eurozone) 등 국가들은 금융 안정을 통화 당국의 주요 목적을 명시하고 있진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직후 한은법을 도입하면서 통화 정책이 물가 안정보다 금융 안정에 무게를 두고 운용돼왔던 것으로 KDI는 분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정규철 KDI 박사(경제전망실 경제총괄)는 "적어도 통화 당국은 물가 안정에 상당히 집중해 물가가 지나치게 낮거나 높아지는 현상을 방지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물가의 하락 폭보다 실질금리를 더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테일러룰'(Taylor Rule) 등을 고려해 보면 그간 통화 당국이 금리를 활용한 통화 정책을 충분히 신축적으로 운용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통화 당국이 금융 안정을 우선해 물가 안정에 집중하지 못했던 사례로는 최근 가계부채 정책을 들 수 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수 개월째 1% 내외에서 정체하고 있는 가운데 금리를 낮출 여력이 있었는데도, 늘어나는 가계부채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다는 것이다. 자본 유·출입 문제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외환건전성관리법 등 다른 규제 수단을 고려하지 않고 금리로 대응했다는 점도 정책적인 실패라고 KDI는 지적했다.
실질금리가 물가상승률,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 등과 반대 방향으로 조정된 점에서도 통화 정책이 물가와 경기 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타난다고 KDI는 짚었다. 정 박사는 "한은은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에 충분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금융 안정 달성을 위해선 다른 규제 수단이 존재한다"고 짚으며 "운용 시스템을 개선하면 통화 정책을 통한 물가나 경기 안정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 등을 통해 통화 정책이 물가 안정쪽으로 집중된다면 물가상승률이 2% 목표치로 수렴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당국의 정책적 여력에 따라 저물가 요인을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물가 정책을 담당하는 당국과의 분석과도 일치한다. 공급 측 단기 충격이 배제된 '근원물가'(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가 0%대 중반의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어 일시적 요인이 사라지면 물가는 다시 반등할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다만 KDI는 최근의 물가상승률 하락에 수요 측 요인도 주요하게 작용했다고 못박았다. 이는 저물가 현상이 날씨, 유가 등 공급 측 충격과 건강보험 적용 확대, 무상급식, 무상교육 등 정부의 복지 정책에 근거했다고 밝힌 기획재정부의 입장과 대비된다. KDI에 따르면 공급 충격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식료품 및 에너지'가 물가상승률 하락에 기여한 정도는 -0.2%p였다. 이를 제외한 상품(-0.3%p)과 서비스(-0.4%p)의 기여도는 이보다 더 컸다.
정부 복지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이 배제된 민간소비 디플레이터 상승률은 올해 상반기 0.5%로 축소됐으며 생산자물가 상승률도 0.0%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의 평균값(0.4%)과 함께 중간값(0.3%)도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어 농축산물 등 극단치에 좌우됐다 보기도 어렵다는 분석이다.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과도 같은 방향으로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수요 충격의 영향이 더욱 컸다는 점이 증명된다고 KDI는 짚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물가상승률 추세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1% 내외까지 축소된 상황이다. 정 박사는 "공급 충격이나 수요 충격이 또 발생하면 또다시 일시적인 물가 하락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화량 조정을 통해 물가의 장기 추세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한은의 역할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suwu@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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