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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으고, 활기 모으는' 도시재생은 이렇게···

입력 2019.09.19. 14:20 댓글 0개
도시재생 1번지 전남 순천...성공비결은 '소통의 노하우'
원도심 향동 일대 빈집 2014년 187동→작년 7동으로 감소
전국 지자체 관계자들 순례하는 도시재생 성지 부상
순천만 갈등 해결과정서 쌓은 지역사회 축적 경험이 성공핵심
전남 순천 원도심의 폐가를 개조해 만든 청수정마을카페.

【순천=뉴시스】박영환 기자 = 가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지난 17일 오후 4시, 전라남도 순천시에 위치한 연안 습지인 순천만 일대. 갈대가 촘촘히 들어찬 광활한 갯벌의 표면에는 작은 흙덩어리가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다. 갯벌의 터줏대감인 짱뚱어와 게가 개흙에 묻은 유기물을 먹고 남긴 흔적들이다. 갈대 사이로는 실지렁이처럼 작고 가는 짱뚱어부터, 집게를 치켜든 게까지 여러 생명체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멈춰섰다가 다시 이동한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지로도 활용된 이 갯벌은 생명체의 보고다. 툭 불거진 눈과 검은색 피부의 짱뚱어는 순천만을 대표하는 생물체다. 백로와 저어새, 흑두루미 등 순천만에서 관찰되는 조류도 230여종에 달한다. 갈대숲 탐방로 앞쪽으로는 용이 누워있는 듯한 모양의 '용산'과 '앵무산'이 갈대밭, 갯벌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화요일 오후 시간대,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온 젊은 부부와 20대 연인을 비롯한 관광객들은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삼매경에 빠져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인 '순천만'을 품고 있으며, 소설 '무진기행'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순천이지만, 산업기반은 튼실하지 못한 편이다. 재정자립도역시 20% 정도. 소설 속 주인공이 '해무' 말고는 지역 명산물이 없고, 농사를 지을 평야도 넓지 않으며, 수심이 얕은 바다를 몇 백리나 밖으로 나가야 수평선이 보이는 '진짜 바다'가 나온다며 넋두리를 늘어놓던 '무진'이 바로 순천이다.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군산이 조선소가 폐쇄되고, 한국GM이 문을 닫으며 요즘 겪는 풍파 역시 이 지역을 비껴가지 않았다. 1990년대 이후 원도심이 쇠퇴하며 중심가의 황금백화점이 문을 닫는 등 일찌감치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향동과 중앙동 일대에 빈집이 늘어만 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김병주 순천시 부시장은 "매년 4000억원 정도를 (지금도) 정부에서 (교부금으로) 지원받고 있다"고 말한다.

전남 순천시 원도심에 위치한 공예창작소

하지만 순천은 현재 전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도시재생 모델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4년 국토부 도시재생 선도사업지로 선정된 이후 청수정 마을카페, 장안창작마당, 생활문화센터 영동1번지 등 지역민이 주도하는 성공적인 '주민자치 도시재생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순천 원도심 도시재생의 성과는 각 지자체들의 주목대상이다. 향동 일대 빈집은 2014년 187동에서 지난해 7동으로 줄었다. 버려진 빈집이나 빈 점포를 활용한 청년창업 챌린지숍, 골목상점, 쉐어하우스 등이 속속 문을 열며 원도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사회적 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주민들이 주도하는 법인도 지난 4년간 40개가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가 156개. 순천은 이제 쇠락하는 원도심에 부심하는 각 지자체들이 앞 다퉈 순례하는 도시재생의 성지로 부상했다.

서울 경리단길을 패러디한 '옥리단길'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공방, 카페, 공연장, 음식점 등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옥리단길 문화의 거리에는 폐가를 개조한 예술인들의 작업장인 극단풍화, 공예창작소, 시간여행, 음식점인 모밀우동 등이 눈길을 끈다.

덕분에 이 지역 관광객은 지난 2015년 26만 명에서 지난해 43만 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들이 쓰는 하루 평균 지출액도 2015년 27만8000원에서 지난해 40만5000원으로 늘었다. 모세환 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 대표는 원도심을 흐르는 옥천 너머에 위치한 커피숍 '귀뚜라미'를 가리키며 "옥리단길이 옥천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공방과 카페, 음식점이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먹을거리를 제공하며 상생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남 순천시 원도심 옥리단길에 위치한 문화공연장.

전문가들은 순천 도시재생 실험이 괄목상대의 성과를 내는 배경으로 끈끈한 주민자치 모델을 지목한다. 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비유돼온 도시재생이 유독 이 지역에서 활력을 얻고 있는 이면에는 지난 1990년 중반 이후 순천만 개발과 보전을 놓고 치열하게 대립해온 지역사회 갈등의 역사가 있다고 진단한다.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이 지역 주민 이견을 조율하고 접점을 찾으며 쌓아온 이른바 '축적의 시간'이 도시재생 주민자치 성공의 풍성한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모세환 지역공동체활성화센터 대표는 "(1990년대 이후) 흑두루미 4마리가 10년간 전봇대에 부딪치거나 전선에 걸려서 죽었다"면서 "2009년 순천만 주변 전봇대 282기를 한꺼번에 뽑고, 순천만 습지 인근에서 짱뚱어, 청둥오리 등을 판매해온 식당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가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모두 힘겨운 협상의 연속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하나둘씩 쌓이고, 이 지역 주민자치에도 반영되면서, 2014년 이후 도시재생 성공의 디딤돌이 된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삼겹살집을 개조해 만든 순천시 장안창작마당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앨리스의 김도혁 팀장.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경제기업들은 주민들의 공론을 파악하는 대민접촉창구 역할을 한다. 한때 이 지역의 명소였지만 소유주가 고령으로 문을 닫은 장안정육식당을 개조해 꾸민 장안창작마당을 운영하는 사회적 경제기업 앨리스가 대표적이다. 고향을 살리기 위해 8명의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로 뭉쳤다. 이 지역 출신의 김도혁 앨리스 기획팀장은 "공유부엌, 공유식당, 장안여신숙, 장안텃밭을 운영하며 주민들의 의견에 늘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반영해 창작마당을 개조한다"고 말했다.

순천 도시재생 모델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양효정 순천시 도시재생과장은 일본의 사례에 주목했다고 강조한다. 마을회관 등에 밤늦은 시간 주민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사례와 문 닫힌 우리나라의 관련 시설을 견주며 커뮤니티의 중요성에 새삼 눈을 떴다는 것이다. 양 과장은 "(순천 원도심의) 주민들이 단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그쳤다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주민들이 아이디어를 내 직접 실험하고 작은 성공의 사례들을 만들어가면서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진단했다.

순천시는 이러한 도시재생 성공의 노하우를 전국의 지자체들과 공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 첫 단추로 오는 11월1일부터 3일까지 '사람 중심, 일자리 중심, 그리고 지역창생'을 주제로 향동·중앙동 도시재생 선도 지역에서 도시재생 박람회를 개최한다. 지자체와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조직 300개 민간투자기업 85개를 비롯한 600개 기관단체에서 참여할 예정이다.

yunghp@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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