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 윤한봉

입력 2017.07.12. 08:37 댓글 0개
김원영 사랑방칼럼 우리들내과 원장/천식비염 클리닉 전문

한겨레신문에 황석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 중 한 대목에서 어떤 이름을 발견하고 난 멈칫했다. 최근 황석영은 자신의 일대기를 담은 자전 ‘수인’을 내놓으면서 그에게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의 명단을 책 말미에 실었다.


“윤한봉(사회활동가, 작고) 김근태(정치인, 작고) 나병식(출판인, 작고) 김남주(시인, 작고) 문익환(목사, 작고) 최승칠(소설가, 작고) 김용태(전 민예총 이사장, 작고) 여운(화가, 작고), 김영중(조각가, 작고) 이문구(소설가, 작고)…”(‘수인’, 감사의 말 중에서)

 

합수(‘똥오줌’의 전라도 사투리) 윤한봉. 2004년 그 겨울의 마지막 날에 뵌 선생의 첫 모습은 한 장의 흑백사진처럼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병원 3층 계단을 적어도 두세 번은 쉬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 올라와 숨을 깊게 쉬며 문 앞에 서 계셨다. 긴 감색 코트를 걸치고 발목을 덮는 방한 신발을 신은 선생의 오른손엔 1970년대 대학생 가방이 적당히 부풀려져 들려 있었다.

 

5·18의 마지막 수배자. 그 이름을 신문에서 볼 때면 강인하고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생의 눈은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순박한 아이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였다.  


선생은 숨이 차서 나를 찾아 오셨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는지 여쭤보았다. 숨소리를 청진기로 들어 보고 흉부 사진을 찍고 폐기능검사를 했다. 

 

흉부사진엔 특이 사항은 없었지만 선생의 폐기능은 정상인의 20%를 넘지 못했다.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Chronic obstructive pulmonary disease, 전에 폐기종과 만성기관지염이라고 불렸던 질환이 여기에 속한다)이다.

 

조금 빨리 움직이면 숨이 차고 감기라도 걸리면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을 하고 폐렴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된다고 조언을 드렸다. 그리곤 덧붙여 물었다.

 

혹시 담배를 많이 피우셨습니까? 선생은 담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화물선에 몸을 숨긴 35일간의 밀항 동안 자기에겐 담배와 초콜릿만 주어졌고 그것으로 두려움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국 생활에서도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연히 담배가 친구가 될 수밖에 없었단다.  


선생은 의사 말을 잘 듣고 조언을 잘 따르는 환자였다. 그러나 증상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폐렴으로 고생을 하신 뒤에는 내게 폐이식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말씀하셨다. 

 

난 우리나라에서 신장이나 간이식은 보편화 되어 있지만 폐이식은 아직은 시도하는 단계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러나 “김 원장 난 한순간이라도 숨을 편하게 쉬고 싶어!”

 

그 한 마디에 나는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었다.

 

또 그 말은 만성폐쇄성폐질환으로 인해 숨이 차다는 것과 함께 자신이 짊어진 역사의 무게, 광주의 무게에 대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수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갔다 와야겠다고 말씀하시는 선생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증상이 악화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처방을 드리고 어떻게 약을 드셔야 하는지 적어 드렸다.

 

미국에 다녀오신 후 추석에 내게 그동안 고마웠다는 편지와 함께 과자선물을 보내오셨다.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의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는 의사의 마음은 편할 수 없다.

 

수술을 끝까지 말려야 하지 않았을까 몇 번씩 그 앞에서 내게 되물어 보았다. 그리고 내게 말씀하셨던 “김 원장 난 한순간이라도 숨을 편하게 쉬고 싶어!” 그 말 그대로 지금은 편히 쉬시라고  명복을 빌었다. 


지난달 27일로 선생이 떠나신지 10년이 지났다. 오늘 자신은 ‘나쁜 사람들에 대해서 맞서 싸우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선생의 말씀이 생각난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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