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나무

입력 2017.06.26. 08:38 댓글 1개
김한호 사랑방칼럼 문학박사/수필가/前 고교 교장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더니 천연기념물처럼 잘생긴 소나무가 먼저 이사를 와 있었다. 그 소나무는 가지가 많이 퍼진 300년 된 반송으로, 임실군 삼계면 덕계리 무명지에서 옮겨온 다박솔이라고 안내 표지까지 있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이 소나무를 ‘오억이’라고 불렀다. 5억 원을 들여 소나무를 아파트에 옮겨 심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올 봄에 이사 온 아파트는 소나무숲으로 조경을 했는데, 그중에서 오억이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낙엽이 지고 아직 새싹이 돋아나지 않은 이른 봄에 30층이나 되는 11개 동의 아파트 빌딩숲에서 푸르름을 잃지 않고 의연히 서 있는 낙락장송이 마치 군자처럼 늠름해 보였다.


소나무는 사군자가 아니지만 군자의 기품을 지녔다고 하여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다. 추사 김정희가 그린 국보 180호의 ‘세한도’에는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나중에 시듦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고 하여 지조와 절개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 충신을 낙락장송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소나무는 십장생 중의 하나이다. 소나무 노거수 중에는 천연기념물이 많이 있으며, 충북 보은의 ‘정2품송’과 경북 예천의 ‘적송령’은 수령이 600년이나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화이트산에는 수령이 4600년으로 추정되는 ‘브리슬콘 소나무’가 있는데,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물로 알려졌다.


이처럼 소나무가 오래 살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장수를 기원하며 금줄에 솔가지를 끼우고, 사람이 죽으면 영생하도록 송판으로 널을 만들었으며 묘지 주변에는 도래솔을 심었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희비애환을 함께 하며 살았다.


그 까닭은 우리나라 산에 자생하는 나무의 절반가량이 소나무이며, 소나무는 목재나 땔감으로 쓰이고, 송진, 송기, 백봉령, 송이버섯이 나고, 송편, 송화다식, 송화주, 솔잎차를 만들므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의 원형질 속에는 소나무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콘크리트 건물로 에워싸인 아파트 단지에 소나무숲을 조성하여 정서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 오억이를 먼 곳에서 데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서 푸르던 소나무가 붉은 소나무로 변해갔다. 더구나 가뭄으로 나무가 메말라가면서 피골이 상접한 늙은이처럼 죽어갔다.


학마을에 소나무숲이 울창하게 우거지면 광주천에서 백로가 날아들 것이다. 그러면 달 밝은 밤이나 별이 빛나는 밤에 솔잎차를 마시며 밤을 지새우면서 명작을 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억이가 죽으면 그 꿈도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들에 핀 풀꽃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아름답다.

 

그런데도 인간은 자연을 물욕의 대상으로 여겨 무분별하게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수형이 아름다운 오억이도 300년 동안 살았던 그곳에서 몇백 년을 더 산다면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 때문에 낯선 도시에서 죽게 되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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